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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네거티브 시스템에 익숙해지자(2009.7.16)

joon mania 2015. 8. 7. 17:15

[특파원 칼럼] 네거티브 시스템에 익숙해지자(2009.7.16)



3년 전 워싱턴 특파원으로 발령을 받았을 때 미국을 알아보려 꽤나 애쓴 적이 있다. 


새삼스럽게 미국 역사를 훑어봤다. 문화를 이해하겠다며 영화를 볼 때나 노래를 들을 때도 주의를 기울였다. 그 나라 특징을 정리한 책도 몇 권 섭렵했다. 


어느 평론가는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미국 사회를 대표하는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개인 권리와 의무를 바탕으로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행동 양식에 힘입어 미국 사회가 이뤄졌다는 얘기였다. 다른 작가는 자신이 미국에서 생활한 것을 바탕으로 경찰 힘이 왜 그렇게 세고 공권력 집행이 엄격한지를 이민 사회라는 특수성에서 찾았다. 


백인, 흑인, 아시안, 히스패닉, 아메리카 원주민 등 다양한 인종 구성도 그렇지만 신세계를 찾아 끊임없이 이방인들이 모여 드는 사회에서 공권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침해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는 얘기였다. 


평소에는 그냥 넘겼던 책들이지만 미국에서 일해야 하는 특파원이라는 임무를 앞두고 있던 그 시점에는 달리 받아들여졌다. 그런 주장과 논리가 상당히 그럴듯해 보였다. 


이제 3년간 특파원 생활을 마치는 시점에 기자도 본인 관점으로 미국 사회를 특징지을 뭔가를 찾아보려 노력해봤다. 


`네거티브 시스템`이었다. 네거티브 시스템은 원래 무역 규제에 관련된 경제 용어다. 이제는 정치ㆍ사회 전반에 걸쳐 쓰인다. 원래 의미는 이렇다. 수출입 자유화가 원칙적으로 인정된 무역제도에서 예외적으로 특수한 품목에 대해 수출입을 제한 또는 금지하는 방식을 취하는 제도다. 쉽게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하는 행위나 대상을 구체적으로 적시해 놓고 이건 금지하지만 쓰여 있지 않은 나머지는 모두 허용하는 것이다. 


네거티브 시스템은 선진국에서 주로 채택한다. 원래 출발인 무역 제도에서 그랬다. 미국에서는 사회 각 분야에 이 같은 네거티브 시스템이 적용된다. 예를 들어 미국 도로에는 곳곳에 좌회전이나 유턴 금지 표시가 반드시 있다. 그게 없는 곳에서는 어디서든 할 수 있다. 하지 말라는 표시만 없으면 어떤 일이든 거리낌 없이 한다. 남들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대신 철저하게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한다. 법을 위반한 행동이라면 가차 없는 벌을 감수해야 한다. 법과 관련 규정에도 빈틈이 없다. 무리한 법 적용이라는 반발을 초래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금지 대상을 자칫 잘못 올려 놓으면 부작용이 수반된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다듬어지고 정리돼 체계를 잡는다. 


`네거티브 시스템` 방식은 분명 선진국 스타일이다. 사회 구성원 각각과 개인의 약속 준수와 책임을 전제로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이제는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네거티브 시스템`을 확산시켜야 한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를 향해 가고, 경제 규모 1조달러로 세계 14위권을 자랑하는 만큼 법과 제도 그리고 국민 행동 양식도 변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들이 네거티브 시스템에 익숙해지면 남에 대한 간섭이나 서로 간 갈등도 줄어들 수 있다. 


사회 곳곳에서 행동 양식으로서 `네거티브 시스템`을 확산시켜 보자. 


[워싱턴 = 윤경호 특파원 yoon218@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