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컬럼] 세종시에 가보셨습니까? (2011.11.2.)
세종시 공사판을 보는 순간 가슴이 답답했다.
그동안 뭐 하고 시간을 낭비했을까. 기왕 추진될 일이라면 허송세월 했구나 싶었다. 서둘렀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중앙행정기관 청사 용지에는 국무총리실로 쓸 건물이 지어지고 있다. 내년 4월 완공 목표다.
청사 건물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상가든, 일반주택이든 찾아보기 힘들다. 총리공관이 들어갈 땅엔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내년에 하나둘씩 이전한 뒤 정부 부처 공무원들은 이런 허허벌판에서 어떻게 지낼까 싶었다.
2012년 4월에 1단계로 국무총리실이 내려간다. 2단계로 12월까지 기획재정부, 국토해양부 등 10개 기관이 더 간다.
2014년까지 모두 36개 기관, 1만452명의 공무원이 가야 한다. 16개 국책연구기관과 종사자 3353명도 2013년까지 이전한다. 일할 사무실과 살아야 할 집, 먹고 마실 상가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는데 누가 가고 싶어하겠나. 미혼 공무원들이 세종시로 내려가지 않는 부처로 옮기려고 발버둥을 친다는 게 이해가 갔다.
청사 바로 앞에 호수가 만들어진다. 벼 심던 논터를 물로 채운다니 믿기지 않지만 계획은 그렇게 돼 있다. 그런 중장기 계획이 되레 더 황당하게 느껴진다. LH에서 공급하는 공공아파트인 첫마을 1단계에는 두 달 후면 입주를 시작한다. 바로 앞에 금강을 품고 있어 좋은 위치다. 그래봐야 그림의 떡이다. 입주가 시작돼도 당분간 그 집에 들어가 살 사람을 찾기 어려워서다.
공무원들은 내년 하반기부터나 본격적으로 거기서 일할 예정이니 세입자를 구하려고 출혈 경쟁을 할 게 뻔하다. 세종시 첫마을 아파트 전세금이 인근 대전 노은지구에 비해 3분의 2 정도밖에 안 된다는 얘기가 벌써 나돈다.
황량한 세종시를 보면서 대한민국의 정치력 부재를 절감했다.
결과론으로 얘기하는 거지만 결국 이렇게 갈 일이었다면 공사 중단이 너무 안타까웠다. 세월을 다시 뒤로 끌고 가고 싶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부터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된 2010년 6월 사이에 정부청사를 짓고, 아파트를 세웠다면 도시로서의 모양을 이미 갖췄을 거라는 아쉬움이 많다.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원안에 진정 심각한 문제를 느꼈다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뒤집었어야 했다. 세종시로 중앙부처 행정기관을 대거 내려보내는 게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야기한다고 판단했으면 기필코 막았어야 했다. 국민들에게 무릎을 꿇고 울면서라도 호소하고 설득했어야 했다.
수정안 추진도 어정쩡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갓 새로 임명된 국무총리(정운찬 씨)가 총대를 메고 나설 일이 아니었다. 국운이 걸리고, 후세에게 짐을 지우지 않아야 하는 일이었으면 대통령이 더 전면에 나섰어야 한다. 국민투표에 부쳐서라도 국민의 의사를 물어 백지화를 끌어냈어야 했다.
일정대로라면 세종시는 2005년 5월부터 2030년까지 25년간 조성된다. 사업비만 23조6000억원이다. LH 15조1000억원, 정부 8조5000억원씩이다.
정부는 행정복합도시건설청에서 쓸 내년 예산으로 8000억원을 요청해놓고 있다. LH는 작년까지 세종시에 5조9000억원을, 올해엔 1조4000억원을 각각 집행했다. 내년엔 올해보다 줄어든 1조1000억원 정도를 책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년간 4대강 살리기 사업에 23조여 원을 집중적으로 쏟아부어 마무리지어냈다. 국토해양부 등 관련 부처 관계자들이 밤을 새워 해냈다. 대통령의 관심과 의지가 강했으니 가능했다.
세종시 조성 사업도 4대강 공사처럼 밀어붙이기를 권한다. 이젠 아무리 발버둥쳐도 돌이킬 수 없는, 정해진 일이니까 하는 얘기다.
`처삼촌 묘 벌초하듯` 하는 둥 마는 둥 해서는 안 된다.
세종시로의 행정기관 이전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앞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땅에 떨어질 거다. 어느 정권에서 결정된 일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 대통령의 임기 안에 세종시 조성 사업을 밤새워 밀어붙이라고 주문한다.
그게 정부에 대한 신뢰, 정책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는 길이다.
[윤경호 부동산부장 yoon218@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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