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63명 위안부와 220만명의 참전군인(2012.1.3.)
격동의 역사 몸으로 말하는
위안부 피해자와 한국전 참여 미군
생존자들 세상 뜨기 전에
진실 담은 제 모습 기록하고
얽힌 매듭도 모두 풀어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실체를 국제사회에 처음 알린건 1988년 제주에서 열렸던 한 세미나였다.당시 일본인들의 기생관광 반대운동을 펼치던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주관한 자리다.윤정옥 전 이화여대 영문학과 교수는 정신대라는 이름의 추한 역사를 공식 거론했다.
위안부 문제는 윤교수의 집요한 노력 덕분에 역사의 뒤안에서 전면으로 나왔다.이제 88세를 맞은 그는 동시대 여성들의 아픔에 남다른 관심을 쏟아가며 평생 매달렸다.1980년엔 일제때 강제로 끌려갔다가 고향에 오지 못하고 오키나와에 살던 배봉기 할머니의 존재를 알렸다.이화여대안에 정신대연구소도 설립해 운영했다.그의 노력은 이효재 전 이화여대 교수와 박순금 전 한국교회여성연합회장의 가세에 힘입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출범으로 이어졌다.1990년 11월 16일의 일이다.
정대협은 1992년 1월부터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집회를 시작했다.그리고 19년을 보낸 지난달 28일 1002회째를 이어왔다.역사적인 1000회 집회 하루전 위안부 쉼터에서 여생을 보내던 김요지(83) 할머니가 세상을 떴다.그 며칠 앞서 중국 훈춘에 살던 박서운(94) 할머니도 돌아가셨다.한국 정부에 등록된 234명의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지난해에만 16명이 타계했다.이제 남은 생존자는 63명. 그들의 평균 연령은 87세다.
미국에서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디지털 기념관'(Korean War Veteran Digital Memorial)이라는 이름의 웹사이트(www.kwvdm.org)가 지난해 12월15일 개설됐다.시라큐스대학 맥스웰 스쿨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는 한종우 교수가 펼친 노력의 결실이다.사이트에는 중부뉴욕 한국전 참전용사협회 105지부에서 확보한 증언과 사진, 일기, 포스터, 지도 등 생생한 자료 1262점이 실려있다.
미국 정부가 한국전쟁 참전용사로 규정한 대상은 700만여명. 6.25전쟁 개전후 유엔군 참전부터 휴전까지 전투에 참여한 군인에다, 1955년 1월까지 한국에 근무하며 전후 처리에 관여한 이들을 아우른다.그들의 평균연령은 82세.아직 220만여명이 생존해 있지만 5년후엔 절반으로,이후엔 더 빠르게 줄 것이라는 예상이다.
한교수는 2006년부터 한국전 참전용사 디지털 기념관 작업을 구상했다.지난해 5월부터 본격적인 자료 확보에 나섰다.
올해부터는 뉴욕주를 뛰어 넘어 2016년까지 미국 전역으로 넓혀간다는 계획이다.관련 재단도 출범시킨다는 목표다.
한 교수는 "잊혀진 전쟁이라는 불명예를 떼내고 양국의 젊은세대들에게 역사교육을 제대로 시키기 위해 시작했다"며 "민간 차원에서의 이런 작업이 한미동맹을 더 공고하게 강화하는 효과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와 한 교수가 뿌린 씨앗은 묻혀버릴 역사를 전면으로 이끌어낸 디딤돌이다.
수요집회 1000회를 맞아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13세 소녀상에는 매일 새로운 목도리와 털모자가 바뀌어 둘러쳐진다.윤 교수가 뿌린 씨앗이 많은 이들에게 퍼져가고 있음을 보여준다.서대문구 위안부 할머니 쉼터나 경기도 광주에 있는 또 다른 쉼터인 `나눔의 집'도 윤 교수의 씨앗이 일궈낸 열매들이다.
지난해말 교토 한일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를 적극 거론했다.올해 양국간에 밀고당길 현안이 산적해있지만 이 난관부터 먼저 넘어야 한다.
역사학자 E.H.카는 "우리는 오로지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과거를 조망할 수 있고, 과거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아픈 역사를 몸으로 보여주는 동시대의 생존자들로부터 얻는 증언은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생생하고 진실을 담고 있을게다.
임진년 새해 사흘째다.아직 세상을 뜨지 않은 위안부 할머니들과 한국전 참전 미군들에게 관심과 작은 성원을 보내는걸로 올해를 시작해보자.
윤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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