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컬럼

매경포럼/다시 남부권 신공항을 만들겠다니 (2012.2.14일자)

joon mania 2015. 8. 8. 22:52

매경포럼/ 다시 남부권 신공항을 만들겠다니 (2012.2.14일자)




이명박 정부의 최대 치적인 4대강 사업에 쏟아부은 돈은 2년간 22조2000억원에 달했다. 작년 부동산 부장으로 일하던 시절엔 4대강 사업에 박수를 많이 보냈지만 최근 가열되는 복지 확대 논쟁을 보면서 마음이 바뀌고 있다. 


정부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인천공항~평창을 68분에 달리는 고속철도를 9조원 들여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원주~강릉 복선전철(3조3370억원), 경기 광주~원주 제2영동고속도로(1조1500억원) 등 도로와 부대시설 공사에 9조원이 더 투입된다. 계획대로라면 총 18조원이 들어가야 한다. 


복지정책 확대의 시금석인 듯 정부와 정치권이 질세라 5세 이하 보육 지원에 난리법석이었다. 들어가는 돈을 보면 올해 4조3000억원, 내년 6조원이면 된다. 4대강 사업비나 평창 올림픽 SOC사업비에 비하면 소리만 요란할 뿐 많지 않다. 


이미 지출된 일회성 투자사업 예산으로 매년 반복되는 경상비 예산을 충당하자는 주장에는 무리가 있다는 걸 안다. 더욱이 복지 정책은 일단 진행하면 중단하기 어려운 속성이 있다. 물가나 인건비 상승으로 계속 예산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렇다 해도 우리의 재정지출 구조를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도달했지 않나 싶다.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재정지출 우선순위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과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가열되는 각 당의 복지정책 퍼레이드를 보면 이런 생각이 절실해진다. 


일본의 재정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공공투자사업과 금융안정화사업 지출로 악화된 측면이 크다. 당시 재정 지출에서 공공투자사업비는 전체의 30%를 차지했을 정도였다. 이미 급속한 고령화가 예견됐음에도 SOC사업 중심의 경기부양 정책에 재정 여력을 탕진했다. 연금 고갈이나 의료비 증가 대비는 뒤로 미뤘다.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사업 요구로 뻔히 공급 과잉임을 알면서도 도로를 놓고 다리를 가설한 결과다. 


우리의 요즘 모습과 흡사하다. 강원도에서 전라도까지 고속도로 옆에 4차로 국도와 2차로 지방도가 겹겹이 있지만 다니는 차량은 몇 대 안 되는 현실을 그 지역 국회의원도, 예산실 공무원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도 지역 SOC사업을 위한 정치권의 요구는 해마다 끊이지 않고 결국 반영된다. 


동남권 신공항을 놓고 부산권과 경북권 양쪽으로 갈려 한 치 양보 없이 싸운 게 언제였는데 또다시 남부권 공항을 공약으로 새로 내걸려는 움직임이다. 다른 지역에서 가만 있을 리 없다. 너도나도 SOC사업을 요구하면 나라 살림은 어떻게 꾸려 가나. 앞으로는 지역 SOC사업을 벌이려면 미국에서처럼 중앙정부의 지원을 최소화하고 해당 자치단체와 지역주민의 돈으로 하도록 해보자. 그래도 이렇게 무책임한 공약을 남발할까. 


독일의 조세부담률은 23.1%로 우리의 19.3%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부러울 정도의 보편적 복지를 구현하고 있다. 2010년 독일 정부 예산 중 사회보장지출 비율은 54%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부분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복지쪽에 집중하는 재정지출 구조를 만든 덕분이다. 우리의 올해 복지예산은 92조6000억원으로 전체의 28.5%를 차지한다. 최근 4년간 매년 평균 8.5%씩 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대세다. 


재정지출에는 우선순위를 어디에 부여할 것이냐는 고민이 항상 따라다닌다. 부가가치를 어느 쪽이 더 많이 생산해낼지 혹은 사회적으로 어느 분야를 더 우선해야 할 것인지를 따져야 한다. 정치적인 선택이다. 


재정지출 구조를 원점에서 검토해 이젠 SOC사업 예산을 줄이겠다고 용감하게 선언하는 후보가 어디 없을까. 여야 간의 신사협정은 안 나올까. 지역 선량을 뽑는 총선이든 국정을 이끌 지도자를 뽑는 대선이든 다 적용된다. 다가올 선거에서는 그런 용기 있는 이가 나오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찍어 줘야겠다. 


[윤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