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컬럼

매경포럼/ `오캄의 면도날`과 `살라미 소시지` (2013.6.4.)

joon mania 2015. 8. 8. 23:32
매경포럼/ `오캄의 면도날`과 `살라미 소시지` (2013.6.4.)

 

                         " 

취임100일 조용히 넘어가지만

정치에 상징조작 적극 활용해야

국정운영 성과 알리는데 효과적

앞으로는 백화점식 나열 말고

하나라도 잘한다는 인식 심어주길

                     "

박근혜 대통령 취임 100일에 정치학 교과서에서 배운 상징조작을 생각한다. 월터 리프먼이 `대중 여론`에서 지칭한 상징(Symbol)을 활용한 정치공학 기법이다. 

청와대 측은 역대 정권마다 했던 기자회견도 안 한다. 내건 캐치프레이즈도 없다. 정치적 상징조작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100일간 무슨 일을 했지? 공과가 겹쳐 떠오른다. 한쪽에는 방미 외교, 개성공단 폐쇄, 부동산대책이 있다. 다른 쪽에는 고위직 인사 난맥과 윤창중 스캔들이 자리한다. 100일 이후 1년까지 앞으론 뭘 할까? 지난달 말 140개 국정과제를 확정했고 대선 공약 가계부도 내놓았다.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로드맵도 나온다. 사과나무 심듯이 묵묵히 하나씩 정책들이 이어진다. 추경예산도 편성하고 금리도 낮췄다. 성과를 평하기에 이르지만 경기를 끌어올리려 안간힘을 쓴 건 분명하다. 

정치적 상징조작으로 접근하자면 두 가지 전술이 선택 가능하다. `오캄의 면도날(Occam`s Razor)`과 `살라미 소시지`다. `오캄의 면도날`은 14세기 중세철학에서 나온 이론이다. 피부를 상하지 않고 수염을 잘 깎으려면 면도날은 예리할수록 좋다는 인식에 기초한다. 복잡한 것을 빼고 단순화하는 게 가장 뛰어나다는 논리다. 선택과 집중이다. 

`살라미 소시지`는 얇게 썰어 먹는 이탈리아 소시지 살라미에서 나온 말이다. 여러 개로 쪼개 상대를 헷갈리게 만드는 전술이다. 다양화하고 복잡하게 만들어 효과를 배가하는 것이다. 백화점식 나열이다. 

박 대통령과 참모들은 100일 이후에는 `오캄의 면도날` 전술을 택했으면 한다. 하나라도 확실하게 잘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라는 얘기다. 

개인적으로 지난달 방미 때 한국에 대한 전문직 비자 쿼터 확대 언급에 가장 주목했다. 박 대통령은 워싱턴DC 동포들과 만난 자리에서 1만5000개 쿼터 확보를 미국 의회와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외국인 전문인력에 대해 취업비자(H1B)를 연간 8만5000개 발급한다. 학사 6만5000개, 석사 이상 2만개다. 인도와 중국에서 전체 중 60% 이상을 가져가 버린다. 한국인은 3000개 정도 배정된다. 이를 1만5000개까지 늘리겠다는 것이니 10만여 명에 달하는 미국 유학생 중 현지 취업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최대 희소식이다. 

미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나라에 전문직 비자 쿼터를 별도로 할당해 왔다. 호주에는 FTA 발효 후 E-3 비자 형태로 1만5000개 쿼터를 추가로 줬다. 의회 권한이었는데 행정부에 위임했다가 하필 우리나라부터 다시 찾아가 버렸다. 그러니 의회를 상대로 직접 협상해야 한다. 

전문직 비자 쿼터 확대는 통합이민법에 관련 조항을 넣어야 한다. 친한파 의원들에 의해 다른 비자 쿼터를 확대하는 법안도 별도로 발의돼 있다. 주미 한국대사관은 이들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도록 로비스트 고용에 올해 170만달러를 썼다. 비자 쿼터를 늘릴 수만 있다면 예산을 더 밀어줘서라도 로비활동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 방미 때 성사시킨 대학생 연수취업프로그램(WEST) 연장도 작지만 실질적이다. 2008년 한ㆍ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뒤 5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해 왔다. 한국 대학생들에게 어학연수 5개월+인턴 12개월+관광 1개월 등 18개월간 미국 체류를 보장하는 내용이다. 한 해 350명 전후 학생들이 뽑혀 미국을 경험했다. 

한ㆍ미 동맹 강화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국민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이런 쪽이 방미 성과에서 훨씬 와닿는다. 미국 전문직 비자 쿼터를 장황하게 거론한 것은 이런 취지에서다.

정치에 상징조작은 필요하다. 이성을 깨우거나 감정에 호소하며 동의를 끌어낸다. 어떤 방식이 효과적일지도 선택해야 한다. 100일 이후엔 오캄의 면도날처럼 단순화하시길. 살라미 소시지같이 잡다하게 벌이지 마시길. 작지만 하나라도 잘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윤경호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