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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포럼]포츠담의 추억(2017.11.9.)

joon mania 2017. 11. 8. 17:53

[매경포럼]포츠담의 추억(2017.11.9.)

2차대전 처리 얄타·포츠담 회담서
강대국이 한반도의 운명 갈랐다
북핵 해법 다룰 미중정상회담이
우리를 쏙 뺀채 결정돼선 안된다


베를린에서 외곽행 열차 에스반으로 1시간이면 충분했다.지난달 말 출장길에 포츠담 체칠리엔호프 궁전에 찾아갔다.1945년 7월 미국,영국,소련 수뇌가 모여 2차세계대전 전후처리 방안을 논의했던 곳.세 거두가 앉았던 원탁 테이블과 의자는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있다.궁전의 일부는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다섯달전 우크라이나 얄타의 리바디아궁전에서 열렸던 회담에는 미국 프랭클린 루즈벨트,영국 윈스턴 처칠,소련 요시프 스탈린이 만났다.이탈리아는 항복했고 독일도 손을 들기 직전 3국은 전후 처리를 이미 논의하기 시작했다.포츠담 회담엔 주인공이 일부 바뀌었다.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 그해 4월 뇌출혈로 사망하는 바람에 부통령 해리 트루먼이 대통령직을 승계해 나타났다.처칠 영국 수상도 회담 도중 선거에 패배해 노동당의 클레멘트 애틀리에게 자리를 넘겼다.역사적 우연까지 한몫 한데다 얄타부터 참여한 덕분에 스탈린은 내내 주도권을 쥐었다.
하지만 얄타와 포츠담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바꾼 쓰라린 정상회담이다.패전국 독일을 분할 통치키로 한 결정과 함께 한반도를 38도선으로 나눠 소련과 미국이 관리키로 한 방안이 짜여졌다.정작 전범국 일본을 분할하지는 않고 그 식민지 한반도를 쪼갠 것이다.소련은 러일전쟁 때 잃은 북쪽 4개섬 반환에 만족하며 한반도를 38선으로 분할하는 것으로 정리했다.식민지에서 막 벗어났지만 그래도 주권을 회복한 국가 운명이 강대국간 정상회담에서 결정돼버렸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출입기자로 취재했던 경주 한미정상회담도 끔찍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조지 W.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5년 11월 부산 APEC정상회의 참석길에 경주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따로 가진 만남이었다.두달 전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을 끌어냈는데 미국이 마카오 소재 BDA은행을 북한의 자금세탁 창구라며 제재하자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 정면으로 부딪쳤다.양국 정상은 결국 북핵 문제에 합의된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알렉산더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외교관 생활 중 겪은 최악의 순간이었다고 말했을 정도다.
취임후 첫 아시아순방 길에 한국을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틀간 일정 내내 만족스러워했다.최대 현안인 북한 도발에 대해서는 한미가 압도적 힘으로 공동 대응키로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뜻을 모았다.우리로부터 수십억 달러 어치 무기 구매를 따냈고 한미동맹에 기초한 양국 관계가 얼마나 공고한지 대내외에 확인시켰다.
이렇게 잘 마무리된 한미정상회담을 보면서 얄타와 포츠담을 떠올린 것은 트럼프의 다음 일정인 미중정상회담 때문이다.어제 서울을 떠나 베이징으로 날아간 트럼프는 2박3일간의 중국 국빈 방문에 들어갔다.시진핑 주석은 자금성을 통째로 비우고 청 건륭제가 쓰던 방을 차 마실 장소로 내놓으며 황제 대접을 했다.시주석 스스로 19차 공산당대회 후 1인 천하를 굳혔으니 트럼프와 명실상부한 양강 이른바 G2 위상을 과시하고 싶을 것이다.
트럼프는 이번 아시아 순방을 계기로 기존의 아시아태평양 대신 인도태평양 개념을 꺼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새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미국이 군사동맹 관계인 일본,호주에다 인도를 끌어넣어 중국의 부상에 대응한다는 내용이다.북한에 맞서야 하지만 중국을 의식해 한미일 군사협력을 조심스러워하는 현 정부의 입장을 감안하면 미국의 새 전략에서 한국만 쏙 빠지는 사태가 현실화될수도 있으니 긴장해야한다.
9일 열릴 미중정상회담 의제는 북핵 문제와 양국간 무역 불균형 등이다.우리의 관심은 양국의 북핵 해법 방향이다.중국의 쌍중단(북한 핵 미사일 개발과 한미합동훈련 동시 중단)과 미국의 군사옵션을 포함한 제재압박에서 훌쩍 건너 뛰어 한반도를 흔드는 엉뚱한 카드가 나와서는 안될 일이다.트럼프가 밝혔듯이 한국을 건너뛰는 북핵 해법은 없어야 한다.한반도의 운명이 다시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혹은 우리를 쏙 빼놓고 강대국 정상회담에서 결정되서는 안된다.얄타와 포츠담 회담 재연은 어떤 상황에서도 막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