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준

매일경제 2017년 2월 13일자 기사

joon mania 2019. 2. 19. 18:18

정동의 밤을 8년째 음악으로 채우는 뮤즈

김지현 서울튜티앙상블 예술감독…북카페서 매달 무료 클래식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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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서울튜티앙상블 예술감독. 그녀는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 있는 북카페 `산 다미아노`에서 8년째 무료 음악회를 열고 있다.
사진설명김지현 서울튜티앙상블 예술감독. 그녀는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 있는 북카페 `산 다미아노`에서 8년째 무료 음악회를 열고 있다.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 자리 잡은 북카페 `산 다미아노`는 매달 첫째주 수요일이면 클래식 공연장으로 변신한다. 이 공연을 이끄는 사람은 바로 김지현 서울튜티앙상블 예술감독(49)이다. 

그는 이곳에서 무료 음악회를 8년째 진행하고 있다. 무료 공연이지만 참가하는 연주자들은 정상급이다.
지난 1월엔 지난해 캄피요 국제 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쥔 윤연준 씨가, 그리고 이달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석중 씨와 피아니스트 김준 씨가 협연을 펼쳤다. 김 감독이 이끄는 서울튜티앙상블은 대중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명성이 높은 연주 단체다. 서울튜티앙상블은 김 감독의 어머니이자 한국 피아니스트 1세대로 꼽히는 이옥희 씨가 만든 단체로 내년이면 설립 30주년을 맞는다.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고 온 후 국내 클래식의 문턱을 낮추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클래식이 대중화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아무나 갈 수 없는 공연장이 훨씬 많은 게 현실이죠. 저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게도,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에게도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누구에게든 기회를 준다는 건 인생의 멋진 경험이잖아요." 

김 감독이 2010년 `산 다미아노`에서 무료 음악회 `休(휴) 콘서트`를 시작할 수 있었던 건 당시 서울 정동에 소임지를 둔 수도회 소속 신성길 신부의 제안 덕분이었다. 

"신부님은 북카페 공간을 새로 단장하면서 이곳을 누구나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활용하고 싶어하셨어요. 음악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고 관객을 만나고 싶은 제 철학과도 잘 맞았죠. 재정적으로 넉넉지 않았지만 제가 치던 피아노를 이곳으로 옮기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함께하면서 소박하지만 멋진 공연장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나씩 해 나갔습니다." 

김 감독은 이렇게 마련된 무대에 재즈 국악 퓨전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이 설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했다. 매년 시각장애인 직장인 밴드 공연을 비롯해 장애·비장애 학생들이 함께하는 콘서트도 기획했다. 

"무료 음악회를 추진하게 된 데는 평소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도 한몫했습니다. 장애 아동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활동에 대한 고민이 늘 있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장애인들이 음악을 배우거나 공연을 즐길 기회가 많지 않죠. 무엇인가를 함께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장애인 복지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지난 8년의 공연이 모두 소중했다는 김 감독은 그래도 잊히지 않는 공연 중 하나로 암 투병하던 소녀와 그녀의 어머니가 함께 무대에 올라 합창을 했던 공연을 떠올렸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공연을 갔다가 알게 된 아이였죠. 노래 부르는 것을 매우 좋아해 작은 꿈을 이루고자 북카페 무대에 직접 섰었죠.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했는데, 이 아이 임종이 다가올 무렵 병원에서 연락이 왔어요. 일주일을 넘기지 못할 것 같은데 아이를 위해 마지막 공연을 해달라는 부탁이었죠. 병원에 도착했을 때 소녀는 눈도 뜨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저는 그 아이가 음악을 듣고 있다는 것을 느꼈죠. 음악의 힘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주일을 넘기기 힘들다던 아이는 이후 한 달을 더 살고, 세상을 떠났죠." 
함께하는 연주자들에게 많은 것을 돌려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 크다는 김 감독. 하지만 그의 열정만큼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힘든 상황에서도 대중에게 계속 다가가며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2005·2006년에는 국내 최초로 모차르트 협주곡 전곡을 연주하는 공연을 해냈고, 지난해에는 독일 베를린 공연의 꿈도 이뤘죠.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고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계가 어려워진 상황이지만 공연을 준비하고 마칠 때마다 그 자체로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료 음악회가 열리는 이 북카페도 저에게는 이렇게 아름다운 의미입니다."  [이윤재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