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필동정담] 듀얼 네이밍 (2019.8.7.)

joon mania 2019. 8. 7. 07:10

[필동정담] 듀얼 네이밍 (2019.8.7.) 


프랑키 자파타라는 프랑스 발명가가 플라이보드를 타고 영국과 프랑스 사이 35㎞ 바다 위를 아이언맨처럼 날아 건넜다고 한다. 양국 사이 바다를 영국 쪽 매체들은 도버해협(Strait of Dover)이라고 전한 반면 프랑스 쪽 매체들은 칼레해협(Pas de Calais)이라고 표현했다. 이 지역을 포함해 대서양과 북해를 잇는 영불 사이 큰 바다를 영국에서는 잉글리시 채널(English channel)로, 프랑스에서는 라 망슈(La Manche)라고 부른다. 각각 쓰는 자기 나라 명칭이다.
라 망슈는 옷소매라는 뜻이다. 바다 생김새가 소매처럼 보여서 붙인 이름이다. 우리나라 매체들이 플라이보드 기사에서 영국해협이라고만 썼다면 한쪽의 입장만 대변한 꼴이다. 한국과 일본 사이 바다 이름도 우리는 동해(東海), 일본은 니혼카이(日本海)로 각각 부른다. 두 이름을 다 써줘야 하는데 일본해(Sea of Japan)라는 명칭이 주로 쓰인다. 국제수로기구(IHO)에서 1929년 제작한 바다와 해양의 경계라는 이름의 지도인 S-23에 단일 명칭만 올렸기 때문이다. 식민지배로 주권을 잃은 상태였으니 우리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1992년 유엔지명표준화회의에서 동해와 일본해 병기 요구를 정식으로 제기해 한국 내에서는 물론 국제사회에 이를 알렸다. 이후 일본해와 동해를 병기하는 각국의 지도와 교과서가 속속 늘었다. IHO와 유엔 관련기구에서 동해/일본해 병기를 놓고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다.

CNN은 2017년 3월 7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보도 때 "4발의 발사체가 일본해 또는 동해(Sea of Japan also known as East Sea)를 넘어 1000㎞를 날아갔다"고 표현했다. 지난달 25일 탄도미사일 발사 때도 동해와 일본해를 함께 표기했다. 미국의 내셔널지오그래픽은 1990년대 말부터 이미 동해와 일본해를 병기하고 있다. 더타임스, 르피가로 등도 일찍부터 두 이름을 같이 쓴다.
지명이나 영토 분쟁을 벌이는 지역을 다룰 때 양쪽 당사자의 입장을 배려하려는 취지다.

지명 병기(dual naming)는 단지 지리학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가 간 힘의 논리에다 역사와 생활까지 더해진다. 결국 정치와 외교가 뒤섞이는 고차원 방정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