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컬럼

[세상사는 이야기] 천년 주목 숲길(2022.11.12.)

joon mania 2022. 11. 7. 20:59

[세상사는 이야기] 천년 주목 숲길 

 

생때같은 젊은이들을 보낸

이태원 참사 가을은 비정하다

그에 앞서 발왕산에서 만난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주목의 오묘함은 신비스럽다

 

주목이라는 나무는 태백산을 떠올리게한다.소백산,오대산,덕유산에도 주목 군락지가 있다.해발 1200~1400 미터 100여 그루가 모여 있는 소백산 비로봉 주목 군락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그래도 주목은 백두대간의 중심 태백산이다.태백산 일대에는 수령 300년 이상 주목이 4천여 그루나 널려있다.장군봉에 오르는 길에서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생목에 밀리지 않겠다는 듯 고고하게 서있는 고목 덕분이다.죽은 뒤에도 쉽게 썩지 않는 속성 때문에 살아서나 죽어서나 천년을 이어간다.

태백산의 전유물인줄 알았던 주목을 발왕산에서 만났다.국가 관리 체계에 뚫린 구멍을 세월호 이후 다시 확인시킨 이태원 참사를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지난달 후반이다.생때같은 젊은이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압사라는 참담한 죽음을 당한 비정한 가을이 열리기 전이었다.겨울 스포츠 매니아들에겐 익숙한 용평 스키장 꼭대기가 발왕산 주목 숲길의 시작이다.평창군과 산림청의 공조로 조성됐다.올해 6월 일반에 공개됐다.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1458미터 정상에 올라가면 펼쳐진다.3.2km 이어지는 숲길에는 나무 데크가 완만한 경사로 깔려있다.휠체어나 유모차가 갈수 있다.노약자들에게도 활짝 열려있다.

천년 주목이라는 말은 나무들의 수령을 보면 쉽게 이해된다.1000년 나이를 훌쩍 넘긴 나무가 지천이다.발왕산 숲길의 명물 둘레 4.5미터짜리 `아버지 왕주목`1800년을 헤아린다.고구려,백제,신라가 겨루던 삼국시대부터 뿌리를 내리고 이어왔다.주목에는 나이테가 없어 육안으로는 수령을 측정할 수 없다.줄기에 구멍을 뚫어 현미경으로 살펴야한다.산림청은 1997년 발왕산 주변 주목 260 그루를 보호수로 지정했다.현재 공식적으로 인정된 가장 나이 많은 주목은 정선 두위봉에 있는 1400년 짜리다.군락지의 고도와 나무 두께를 감안하면 공식 최장수 영예가 발왕산 주목으로 옮겨질 수도 있어 보인다.주목은 적목으로도 불린다.나무 껍질에서 보이는 붉은 색 때문이다.여름과 가을철 비 내리는 날 흠뻑 젖은 주목의 굵은 줄기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서리가 내린 뒤 맺어진 상고대는 주목에서만 볼 수 있는 묘한 정취를 건넨다.한 겨울 눈꽃으로 이루는 설경은 주목이 연출하는 장관의 백미다.한번 보면 눈을 감아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잔영을 안긴다.

발왕산 주목에 감탄하면서 한편으로는 천년 주목 군락지를 품고 있던 인근 가리왕산의 무참한 훼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때 알파인스키 활강 경기장 건설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한달 남짓 이어진 한 번의 행사를 위해 천혜의 숲을 파헤쳤다.3km 길이 활강 경기장 시설을 짓는다며 종합운동장 100개 넓이에 해당하는 산림 100ha를 훼손했다.적게는 58000 그루에서 많게는 12만 그루 나무가 잘리고 뽑혔다.다른 곳에 이식된 건 181그루에 불과했다.그나마 이식 후 대부분 고사했다.생태 원상 복원을 외치지만 끔찍한 환경 파괴의 후유증은 오랜 세월 남을 것이다.500년 이상 보존됐던 천연 원시림을 무참하게 짓밟을 권한은 대체 누가 부여했던가.두고 두고 곱씹어볼 일이다.

식물학자들에 따르면 주목은 어릴 땐 내려쬐는 햇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빨리 자라겠다고 발버둥치지 않는다.오히려 유유자적한다.세월을 버텨낸 주목은 다른 나무들보다 더 커져 햇볕을 받는데 뒤지지 않게 된다.느긋한 여유가 되레 긴 생명력을 끌어낸 셈이다.꼬이고 겹쳐진 기이한 줄기는 살아남기 위한 투쟁의 징표다.고산지대의 강한 바람과 감당키 어려운 폭설에 대응하는 생존 기술이다.거친 환경에서의 적응과 버팀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주목이 던지는 값진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