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 후보들 통상정책(2008.7.12)
오바마 -보호무역, 매케인-자유무역 극과극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지난 1일 남미 콜럼비아를 방문했다. 미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의 의회 비준 동의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자유무역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행보였다. 같은 기간 오바마 후보는 시카고와 디트로이트 등 일리노이주를 돌아다녔다. 그는 노동자들의 자유무역 반대 기치에 호응하기 위해 노조들과 만남에 주력했다. 경제정책 가운데 후보 간 극명한 의견 차이를 보이는 대표적인 분야가 통상정책이다. 자유무역에 대한 지지 여부 때문이다. 오바마 후보는 자유무역 정책을 대놓고 반대하고 있다. 미국 내 일자리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운다. 한ㆍ미 FTA도 그에게는 못마땅하다. 매케인 후보는 자유무역 확대를 강력히 찬성한다. 한국 등 우방과 전략적 관계의 연장에서 FTA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노조 지지 오바마의 행보
=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오바마 상원의원이 집권 후에도 자유무역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존 F 케네디, 빌 클린턴 등 전임 대통령들은 대선후보 시절 캠페인 기간에는 자유무역에 회의적 시각을 내비치다가도 막상 대통령이 되면 경제ㆍ외교적 이해 확대를 위해 자유무역정책을 추진해왔지만 오바마는 전례를 따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분석이다.
오바마는 당내 경선 과정에서나 양당 후보 간 대결을 시작한 뒤에도 노동자 계층의 지지 확보를 위해 자유무역에 비판적 입장을 천명해왔다. 이 과정에서 오바마는 노조와 반자유무역단체들에 반자유무역에 관한 구체적인 자신의 입장을 거듭 피력해 집권하더라도 이런 공약과 다짐을 쉽게 뒤집기 어려운 단계까지 갔다는 것이다.
오바마는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한다. 이미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대해서도 탈퇴하지는 않겠지만 재협상이 필요하며 NAFTA 중재위원회 재구성도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오바마는 NAFTA를 통해 미국 농업이 멕시코 농부의 일자리를 빼앗아 불법이민 문제를 심화시켰다며 비록 시장 개방을 지지하지만 자유무역의 대가도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ㆍ미 FTA에 대해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오바마는 민주당 후보로 결정되기 전인 지난 5월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한ㆍ미 FTA를 `아주 결함 있는 FTA`라고 비판하면서 의회에 비준 동의를 받기 위해 제출하지 말고 재협상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이어 6월 중순에는 미시간주에서 한 연설에서 한ㆍ미 FTA를 `현명한 협상`이 아니라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후보로 결정된 뒤 첫 공식 언급이었다.
그는 "자유무역이 미국 소비자의 돈을 절약하고 수출업자에게 일을 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부를 확대한다고 믿는다"며 "그렇지만 부시 대통령이나 매케인 의원처럼 어떤 무역협정이든 좋은 무역협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ㆍ미 FTA를 겨냥해 "한국이 수십만 대의 차를 미국에 수출하면서도 미국 차의 한국 수출은 수천 대로 계속 제한하도록 하는 협정은 현명한 협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오바마의 이런 입장은 노조단체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것이다. 결국 오바마의 성의를 인정한 미국 최대 노동조합인 전국노동자총연맹-산업별노동조합(AFL-CIO)은 지난달 26일 오바마 지지를 공식 결정했다. AFL-CIO 산하 56개 노조 대표들은 투표에서 만장일치로 오바마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존 스위니 AFL-CIO 위원장은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국가가 나가도록 오바마를 지지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AFL-CIO 소속 조합원은 900만여 명에 달한다. 이에 앞서 600만여 명의 조직원으로 미국 내 제2 노조 조직인 `승리를 위한 변화 연맹(CWF)`은 이미 오바마 지지를 선언한 바 있다.
미국 노조 세력은 그동안 민주당의 주요 선거자금 기부자였다. 노조 조직은 2004년 선거에서 5360만달러, 2006년 선거에서 5750만달러를 각각 민주당 후보자와 당에 기부했다. 이번 캠페인에서 AFL-CIO는 2억달러, CWF는 1억달러를 각각 선거자금으로 쓰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미국과 교역을 통해 막대한 무역 흑자를 내고 있는 중국에 대한 공격도 자유무역 반대 논리의 연장에서 이어진다.
오바마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데 찬성하면서 보호무역주의적 색채를 분명히 보이고 있다. 그는 "보조금을 지급받고, 불공정하게 거래된 (외국)제품들이 미국 시장에 넘쳐나도록 하는 게 자유무역이 아니다"면서 "우리는 세계 경제에서 엄청난 무역불균형을 만들어내면서도 수출을 증진하기 위해 환율을 조작하는 나라들을 좌시할 수 없고, 외국의 무역규제가 미국산 제품들을 배척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 오바마에게 월스트리트저널은 정면으로 직격탄을 날린 적이 있다. 이 신문은 지난 5월 말 사설을 통해 오바마가 최근 수십년 간 나온 대선후보 가운데 가장 보호주의적이라며 그의 자유무역에 대한 반대 태도로 미국 국민이 비싼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신문은 "오바마는 대통령이 된다면 지금까지 자신이 밝힌 보호주의 무역 정책이 오히려 미국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그는 변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무역 정책에서는 오히려 현상 유지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신문은 "그가 언급한 자동차 분야만 봐도 미국 소비자에게 한ㆍ미 FTA는 분명 좋은 기회를 준다"며 "한ㆍ미 FTA로 한국산 수입차에 대한 미국의 관세(평균 2.5%)는 없어지고 단계적으로 픽업트럭과 경트럭에 부과되는 25% 관세도 폐지된다"고 설명했다.
◆맹방과의 전략적 관계 중시하는 매케인
= 공화당 매케인 후보는 누구보다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쪽이다. 그 연장에서 미국이 개별국가와 추진하는 FTA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지를 표하고 있다.
매케인은 자유무역이 미국의 농산물과 공산품을 더 많이 세계 시장에 팔 수 있게 함으로써 미국 경제를 강하게 만든다는 뚜렷한 신념을 갖고 있다.
매케인은 지난 5월 시카고에서 가진 한 연설에서 "내가 당선되면 NAFTA를 포함한 기존 국제협정을 준수할 것"이라며 "콜롬비아, 파나마, 한국과의 FTA 등 최종 비준을 기다리고 있는 여러 해에 걸친 양국간 합의를 결코 무산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케인은 특히 한ㆍ미 FTA에 대해 전략적인 차원에서 비준동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그는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했던 강연을 통해 "한국은 심대한 전략적 중요성을 지닌 나라로 50여 년에 걸친 충실한 우방이자 이라크에 세 번째로 많은 군대를 파병하고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도와온 맹방"이라며 한ㆍ미 FTA 비준 필요성을 전략적인 차원에서 강조했다. 매케인은 민주당 오바마 후보가 한ㆍ미 FTA조차 미국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다며 반대하고 있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미국 노동자들의 권익을 오히려 해치는 것일 뿐 아니라 한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도외시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공화당 매케인 후보가 이렇게 자유무역 정책에 입각해 한ㆍ미 FTA를 적극 지지하고 있지만 대선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민주당의 의회 지배가 재현된다면 FTA 처리가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11월 4일 선거에서는 하원 전원, 상원의 3분의 1을 새로 뽑아야 한다. 민주당이 상ㆍ하원에서 다시 다수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데 대해 정치 전문가들이 대체로 이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와 같은 미국 내 정치판의 교착 상태에서는 11월 4일 대선 이전에 한ㆍ미 FTA의 미 의회 처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지배적이다. 부시 행정부에 대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민주당 지도부는 일절 정치적 타협에 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선 이후 차기 당선자 취임 전까지의 레임덕 정국에서 처리 시도를 거론하지만 실현 가능성을 높게 보지는 않는다.
차기 의회나 다음 행정부 몫으로 넘어간다면 공화당 장악이냐 민주당 장악이냐에 따라 처리 방향은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민주당이 집권한다고 해도 일단 집권 후에는 태도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다. 대선 과정에서 한ㆍ미 FTA에 반대했지만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한ㆍ미동맹이 동북아에서 차지하는 지정학적인 중요성 등을 포괄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한ㆍ미 FTA 문제를 후보시절처럼 반대할 수만은 없다는 전망이다.
일반 국민들의 자유무역 정책에 대한 기류는 상황에 따라 변한다. 최근 대선 후보들간에 자유무역에 대한 찬반 공방이 벌어지면서 일반 유권자들 사이에 자유무역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는 것으로 나왔다.
CNN과 오피니언 리서치 코퍼레이션이 지난 6월 말 유권자 906명을 상대로 실시한 공동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중 51%는 자유무역이 미국 경제를 위협하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NN은 자유무역에 대한 일반 유권자들의 태도에서 부정적 의견은 지난 2000년 35%, 2006년에는 48% 등이었다며 절반을 넘은 것은 처음이라고 언급했다.
자동차로 상징되는 굴뚝산업이 주류를 이룬 미시간주, 펜실베이니아주 등에서는 경기 둔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로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반대 정서가 강하다.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와 인근 지역이 대표적이다. 이 지역에서 오바마는 절대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다. 매케인은 이들 지역 경제가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그렇다고 자유무역을 반대하는 것은 국가간의 신뢰를 배신하는 것"이라고 반론을 펼치고 있다.
지난달에는 농업지원법안을 놓고 부시 대통령과 의회 전체가 자유무역 기조의 원칙 문제를 놓고 공방을 벌인 적도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의회에서 통과시킨 농가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담고 있는 농업지원법안이 자유무역 정신에 어긋난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에 의회는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재가결함으로써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무력화해 버렸다. 특히 이번 표결에는 공화당 의원들까지 대거 가세했다.
대선과 더불어 상ㆍ하원 선거와 모두 맞물린 미국 내 정치권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비록 자유무역을 지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당장 농민과 농업계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선거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공화당 의원들도 대통령의 의지나 국가적 대의와는 상관없이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다.
[워싱턴 = 윤경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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