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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매스킨 "지금은 재정 적자나도 경기부양해 파이 키울때"(2009.1.5)

joon mania 2015. 8. 1. 21:20
에릭 매스킨 "지금은 재정 적자나도 경기부양해 파이 키울때"(2009.1.5)

신용평가사 평가 제대로 못하면 보수삭감등 대가 치르게해야
미국車 빅3 갑작스런 퇴출보다 점진적인 시장변화에 맡겨라

◆샌프란시스코포럼 / 에릭 매스킨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 장대환 매일경제회장 대담◆ 

매일경제신문은 새해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미경제학회와 함께 위기에 처한 세계 경제가 갈 길을 모색하는 매경 샌프란시스코포럼을 4일(현지시간) 개최한다. 그 일환으로 200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릭 매스킨 미국 프린스턴대 고등과학원 교수(왼쪽)에게서 세계 경제가 안고 있는 현안을 진단하고 해법을 들어봤다. 장대환 매일경제ㆍTV 회장과 매스킨 교수의 대담은 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전미경제학회 총회 현장에서 이뤄졌다. 

▶장대환 회장=새해가 시작됐지만 경제가 쉽게 회생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온갖 처방을 쓰지만 시간이 걸릴 듯하다. 

▶매스킨 교수=내가 보기에 최소한 1년은 더 필요하다. 미국뿐 아니라 동아시아, 유럽, 일본 모두 어려움에 처했다. 

▶장 회장=각국마다 엄청난 재정을 쏟아 붓고 있다. 헬리콥터에서 돈을 살포하는 꼴이다. 이 많은 재원을 어디서 가져오는 것인가. 

▶매스킨=결국 미래에서 빌려오는 것이다. 우리 아들ㆍ손자에게서 미리 빌려오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경기를 부양해 파이를 키운 뒤 자손들에게 다시 갚을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장 회장=(돈을 쏟아 붓는데) 인플레이션 아니면 하이퍼 인플레이션 가능성은 없을까. 

▶매스킨=인플레이션은 완전고용 상태에서나 나온다. 지금은 실업률이 오히려 높아지는 등 정반대 상황이다. 수요는 줄고, 생산자가 물건값을 낮춘다. 소비자들은 이렇게 값을 떨어뜨려도 물건을 살 여유가 없다. 오히려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 경기부양책은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한 것이다. 

▶장 회장=지난해 1월 다보스포럼에 갔을 때만 해도 돈이 넘쳐났다. 중국의 에너지 수요가 폭증하고, 한쪽에서는 배럴당 원유값을 150~200달러까지 전망했다. 그런데 이제는 50달러를 깨고 30달러까지 떨어졌는데 좋은 현상으로 볼 수 있나. 

▶매스킨=유가 하락은 일시적으로는 좋은 소식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바람직하지 않다. 대체에너지 개발에 나서야 하는데 그 동인을 잃기 때문이다. 원유 의존에서 빨리 탈피해야 우리 미래가 경제적으로 활력 있고 안정을 가질 수 있다. 원유에 세금을 부과해 생긴 돈으로 탄소 배출도 줄이고 지구온난화를 막을 방도도 강구해야 하지 않나. 

▶장 회장=지난해 위기 발생 후 미국 정부에서 주도해 많은 경제정책이 제시되고 있는데. 

▶매스킨=미국 정부가 아직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정책이 있다면 주택시장과 관련된 것이다. 모기지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을 잃는 사람이 수백만 명에 달한다고 얘기한다. 주택을 차압당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가서 살아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채무조정과 상환조건 재구성(refinancing)이 필요하다.

▶장 회장=채무를 일시 유예해주는 방법(moratorium)은 어떤가. 

▶매스킨=단기적으로는 좋은 처방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채무 상환조건 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은 정부 개입 없이는 불가능하다. 

▶장 회장=민간 상업은행에 엄청난 돈을 지원했는데도 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다른 지름길이 있나. 

▶매스킨=일반적으로 직접적인 지원은 감세에서 찾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도 그렇게 하지 않나. 저소득층에는 세금을 깎고 부자들에게는 올린다. 오바마의 정책은 엄청난 재정적자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장 회장=오바마의 경제팀 구성을 어떻게 평가하나. 어떤 성향을 가진 이들인가. 

▶매스킨=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들은 경험이 풍부하고 현재 상황에 적합하다. 사실 케인스주의는 미국에 맞지 않았다. 밀턴 프리드먼의 지위가 이번 사태로 무너지고 케인스가 부활한 셈이지만 프리드먼의 통화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개념은 아직도 유효하다. 

하지만 불황 국면에서는 정부 도움 없이 경제가 회복되기 힘들다. 케인스주의가 필요하고 오바마 행정부는 이것을 택했다. 로런스 서머스 국가경제위원장을 보자. 그는 경기부양책을 강력히 주장한다. 그러면서 통화 공급 등에서는 프리드먼에게 우호적이다. 

서머스는 1970년대 후반 프리드먼의 조언이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해낸 것으로 믿고 있다. 케인스주의와 프리드먼을 모두 활용해야 한다. 양쪽의 사고가 충돌하는 것으로 보면 안 된다. 

▶장 회장=이번 경제위기에서 어떤 나라가 가장 먼저 회복될 것 같은가. 

▶매스킨=중국계 은행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부실이 별로 없다고 알려져 있다. 당장은 어려움이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국제무역에 깊이 의존하고 있는 처지여서 중국도 순식간에 위기에 빠져들 수 있다. 

지금 위기에서 자유로운(immune) 나라가 어디 있겠나. 그런 나라가 있다면 아마 퀀텀점프를 할 것이다. 

▶장 회장=금융위기 배경에는 위험을 다른 쪽에 전이시킨 파생상품 등의 책임도 있다. 하지만 사고가 난 뒤에 전문가들은 새로운 규정과 규제를 거론한다. 신용평가회사들에 대한 신뢰 문제도 같은 차원에서 검토해봐야 한다. 

▶매스킨=신용평가회사에 적용하는 인센티브 체계가 변질돼 버렸다. 평가를 잘못했으면 보수를 깎는 등 인센티브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장 회장=국제통화기금(IMF)처럼 신용평가기구를 국제화하는 방법은 없을까. 

▶매스킨=공정성을 획득하기 위한 변화는 있어야 한다. 평가받는 대상에서 얼마의 비용을 냈느냐에 따라 결과가 맞춰 나온 사례도 있다. 그러면 객관적일 수 없다. 회계법인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과거 엔론 사태 때 이미 경험했다. 그렇게 오래 부실을 감출 수 있었던 것은 회계법인의 보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장 회장=제조업을 버리고 금융업에 주력한 영국으로 화제를 돌려보자. 재규어, 롤스로이스를 팔아버린 그들의 선택은 잘한 것인가. 

▶매스킨=꼭 부정적으로 볼 일만은 아니다. 미국도 언젠가는 자동차를 직접 생산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자동차업계를 갑작스레 망하도록 팽개쳐버리는 것은 큰 실수라고 지적하고 싶다. 갑작스런 파산조치보다는 차츰 규모를 줄여나가도록 채무를 조정해주고 난 뒤 단계적으로 다른 나라가 차 생산에 더 경쟁력이 있다면 서서히 차 생산을 포기하면 되는 것이다. 

▶장 회장=미국 국민들의 자동차산업에 대한 감정이나 향수가 만만치 않은데. 

▶매스킨=물론이다. 누구도 함부로 나서 자동차산업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시장 변화에 맡기면 된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일본 한국 등 외국산 차를 보지 못하고 자랐다. 이제는 변했다. TV도 마찬가지다. 지금 미국에서는 TV를 생산하는 기업이 없다. 

▶장 회장=그러면 어떤 산업이 대체하는 것인가. 

▶매스킨=하이테크 분야다. 자동차산업을 계속 영위하더라도 새로운 유형의 차를 개발하고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각국 공조 견고해야 회생 빨라져 

▶장 회장=한국은 40여 년간 경제성장을 이어왔지만 아직도 부족한 게 많다. 환율 시스템은 매우 취약하다. 미국과 통화스왑뿐 아니라 중국, 일본과도 이를 맺었지만 안전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외환보유액을 더 쌓아야 하나, 한국을 달러 우산 밑에 넣어야 하나. 

▶매스킨=결국 길게 보면 세계는 단일통화로 가지 않을까. 다만 단기적으로는 동아시아 지역 통화연합을 거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이것이 또 다른 금융위기를 막을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장 회장=북미 지역 통화연합을 만드는 것은 어떤가. 미국 캐나다 멕시코에 한국이 가세한다면. 

▶매스킨=분명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통화연합을 생각하면 EU처럼 지정학적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고 전제하는데 재미있는 발상이다. 

▶장 회장=지난해 12월 워싱턴DC에서 열렸던 G20 회의는 부시 미국 대통령이 주도했지만 올 4월에 열릴 런던 회의는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주재로 열려 기대를 모으는데. 

▶매스킨=공조되는 경제정책이 불황을 극복하는 데 더 빠른 결과를 가져오게 만들 것임에는 틀림없다. 

▶장 회장=그렇지만 모든 나라가 한 방향으로만 정책(예를 들어 금리 인하나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자금 쏟아붓기 등)을 펴면 국가 간 경제의 차이를 없애 결국 동일한 사이클로 가버리는 것 아닌가. 

▶매스킨=어느 정도 단계까지는 피하기 어려운 일로 생각한다. 세계화 때문에 한나라가 통화ㆍ금융 정책을 펴면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쪽에서 금리를 올렸는데 다른 쪽이 내리는 식이면 효과를 거두겠나. 불황기에는 정책 공조가 가장 효과적인 해법이다. 

▶장 회장=미국에 현명한 경제학자와 전문가가 많으니 좋은 방향을 제시해 세계 경제가 빨리 회복되기를 희망한다. 

▶매스킨=위기가 창의적인 사고와 개혁에 대한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낳을 수 있다. 지금이 경제학자들에게 바로 그런 때다. 창의력을 자극할 수 있는 계기로 경제학계에 무언가 생산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 에릭 매스킨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에릭 매스킨 교수(59)는 프린스턴대 고등과학원에서 사회과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MIT와 케임브리지대 등에서도 연구활동을 했다. 

그는 메커니즘 디자인 개념을 `게임이론`의 틀로 한층 정교하게 다듬은 공로를 인정받아 레오니트 후르비치, 로저 마이어슨과 함께 2007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는 환경보호나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 등을 위해서는 시장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며 적절한 정책과 메커니즘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가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리 = 윤경호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