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관련 일반 기사

[특파원 칼럼] 美 매카시즘과 AIG 때리기(2009.4.2)

joon mania 2015. 8. 5. 17:00

[특파원 칼럼] 美 매카시즘과 AIG 때리기(2009.4.2)



국외자로서 밖에서 볼 때 미국이 부러운 점은 다양성이었다. 


지역마다 계층마다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사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를 봐도 획일성이나 집단주의는 없었다. 각자의 자유와 선택을 존중하고 상대에게 간섭하지 않는 진정한 개인주의를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됐다. 그런 미국이 달리 보인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초유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실제로 달라졌는지도 모른다. 


정부에서 1700억달러가량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보험회사 AIG 임직원의 보너스 잔치는 지난달 후반 2주일여 미국을 들끓게 만들었다. 주요 신문 헤드라인은 예외 없이 AIG 보너스 관련 내용이었다. 웬만해서는 같은 기사가 1면을 차지하기 어렵다는 미국 신문업계에 이변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AIG 보너스 잔치는 그만큼 미국 국민을 분노케 했다. 대통령부터 연방 상원의원, 뉴욕주 검찰총장까지 AIG를 비난하는 `블레임 게임`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화가 나 말이 안 나올 지경"이라는 직설적인 표현을 동원했다. 


공화당 소속 척 그레슬리 상원의원은 "AIG 임원들이 일본식으로 허리 숙이고 사죄하거나 아니면 물러나든가 자살해야 한다"고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AIG 보너스 지급을 재무부 등 정부 관계자들이 미리 알고도 간과했다고 책임을 거론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 검찰총장은 보너스 수령자 명단 제출을 압박하며 불응하면 법정에 세우겠다고 날을 세웠다. 


익명의 납세자들은 AIG 임직원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가하는 편지와 전화를 서슴지 않았다. 


AIG를 때리는 쪽이면 누구든 박수를 받는 듯했다. 


급기야 연방 하원이 90%에 달하는 중과세로 보너스를 환수하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뿐 아니라 공화당 소속 의원 85명까지 찬성했다. 


중과세 법안 하원 통과는 개선문을 지나는 나폴레옹처럼 보였지만 정작 냉정을 되찾게 만들었다. 


아뿔싸,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무차별적 마녀사냥은 오히려 더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음을 조금씩 깨달았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큰 그림은 보지 못하고 AIG라는 미꾸라지 한 마리 잡으려고 온 연못을 분탕질했음을 나중에 안 셈이다. 


경제전문지 포천은 AIG 보너스 중과세 입법 불가론을 제기했다. 세금을 징벌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점이 논란을 불렀다. 소급 적용 때문에 헌법 해석상 위헌 소지도 제기됐다. 


궁지에 몰린 AIG는 뉴욕 맨해튼에 있는 본사 건물 간판을 바꿔달았다. 보너스 수령자 중 절반 이상이 자진해 반납 대열에 나섰다. 명단이 공개되는 최악 사태를 막아보려는 자기 살길 찾기 측면도 있지만 효과는 있었다. 


하원보다는 다소 신중한 상원에서는 보너스 중과세 법안 심의를 연기하겠다고 화답했다. 


보너스 자진 반납과 상원의 중과세 법안 심의 연기로 보름여를 끌어온 AIG 사태는 슬그머니 잠잠해졌다. 


기자는 AIG 보너스 사태에 대한 미국 국민과 언론 그리고 의회와 행정부 태도를 보면서 1950년대 미국을 휩쓸었던 `매카시즘`이 왜 통했는지 이해할 듯했다. 


돌아보면 미국에서도 `공공의 적`을 앞에 두고는 국민정서법이 앞섰다. 이성적 판단이나 실정법 잣대는 뒤로 밀려났다. 소급 적용을 불사하며 하원에서 통과시킨 보너스 중과세 법안은 법치주의를 전가의 보도처럼 존중한다는 미국의 이미지만 구겨놓았다. 


AIG 보너스 잔치는 계약과 규정을 내세우며 국민 혈세로 잇속만 챙긴 금융자본주의의 일그러진 자화상이었다. 


그렇지만 사후에 이에 대처하는 미국 사회 모습도 이성과 냉정보다는 감정과 열정만을 앞세운 미숙함의 극치였다. 겉으로만 성숙한 체하는 얼치기였나, 초유의 경제위기에 사회가 변했나. 미국 사회를 제대로 보기는 여전히 힘든 일이다. 


[워싱턴 = 윤경호 특파원yoon218@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