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청와대 취재 수첩

2006년 초 청와대 취재 비망록 1

joon mania 2015. 8. 8. 21:48
2006년 초 청와대 취재 비망록 1

<연초 개각과 청와대 고위관계자 식언>

 

병술년 벽두 겉으로는 평온했다.

사학법 개정안 처리에 반발해 장외투쟁을 벌이던 한나라당은 끝내 국회로 들어오지 않았다. 열린우리당은 민주당, 민노당과 손잡고 예산안 및 부동산관련법안 등 계류 안건을 단독 처리해버렸다.

해를 넘기면서 이제 현안은 일부 부처 개각밖에 없어 보였다.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은 각각 12월 30일 오후 사표를 제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날 오후 바로 수리했다. 차관들이 대행하는 체제로 갔다.

통일부와 복지부의 개각 요인에다 과연 어느 부처가 더해져 연초 발표될 것인지가 관심이었다. 개각은 이미 1,2차로 나눠 한다는 방침임이 알려져 있었다. 1차로 당장의 교체 요인이 있는 곳을 바꾼뒤 열린우리당 전당대회(2월 18일)가 끝나고 5월말 지방선거 출마 공직자 사퇴시한(4월1일) 이전에 한차례 더 개각을 한다는 것이었다. 2차 개각에서는 지방선거 출마 요인과 청와대 및 열린우리당측에서의 입각을 위한 자리 바꿈이 예정됐다.

 

이런 가운데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 출입기자들을 삼청동 비서실장 공관으로 초청했다. 1월1일 신년 떡국이나 한그릇씩 하자며 부른 것이었다. 정치인들은 통상 1월 1일 집을 개방해 놓고 계파 사람들이나 기자들을 불러 세를 과시해왔다. 과거 정치의 관행이었다. 참여정부 들어 이런 모습은 점차 사라졌다.

그러나 초대 비서실장이었던 문희상 의원은 정치인답게 공관을 활짝 열어놓고 음식과 술을 제공했다. 노래방 기계까지 틀어 놓고 좋은 점수가 나오면 상품권도 안겨주곤했다.

학자 출신인 김우식 전 비서실장은 이런 관행을 따르지 않았다. 1월1일에도 공관을 개방하지 않았다. 연말 송년 간담회 정도에 그쳤다.

기자 출신 이병완 비서실장은 양자의 중간 정도에 해당됐다. 일단 집을 개방했지만 요란하지는 않았다.그날도 떡국 한그릇이었다. 물론 ‘폭탄주’ 몇잔이 돌았다. 40여명의 기자들을 상대로 돌아가는 폭탄주는 모양내기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다음날 신문을 만들어야 하는 기자들 입장에서는 이 실장의 입에서 개각과 관련한 기사꺼리를 오히려 원했다.

하지만 이실장은 특유의 ‘더듬수’로 일관했다.

이실장은 그날 아침 김영삼 전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자택을 각각 찾아가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 인사와 난을 전하고 돌아왔다. 기자들에게도 그 얘기를 주로 했다. 그러고 나서 개각 관련 얘기로 넘어갔다.

 

-- 오늘 대통령 인사차 관저에 올라갔습니까.

▲ 수석 및 보좌관들과의 신년 인사는 오늘 안하고 내일 아침에 조찬하면서 하기로 했다.

-- 이 실장이 보시는 올해의 사자성어는 뭐가 있을까요?

▲ 천지교태(天地交泰)가 어떨까. 하늘과 땅이 크게 서로 교통하는거. 그런게 좋지 않겠어...

-- (최근 언론사의 신년 여론조사 결과 참여정부 지지도 얘기가 나오자)

▲ 이제는 20%대 지지도라고 쓰면 안되겠네. 우리 조사로는 32-35% 수준이다. 근데 언론 컬럼 등을 보면 항상 `20%대 지지율'이라고 하는데...오늘 (신문)보니까 한나라당도 40%대에서 떨어졌데.

-- 비서실장 종무식 연설 보니까 참여정부가 1년동안 한일이 꽤 많던데요.

▲ 가려진 것중에 하나가 고위공무원단이다. 과거 철밥통이었는데 5% 가량의 공무원이 퇴출이 가능하다고나 할까. 그게 공무원 관료제도의 새로운 스타트가 될 것이다. 공무원 사회가 엄청난 긴장을 하게 된다. 철밥통 보다는 경쟁을 하게 되고...전부 (고위공무원단) 대상이 되니까.

다른 부분은 다 알지 않느냐. 행정중심복합도시, 혁신도시, 8.31 부동산대책 등. 그러나 눈여겨 볼게 고위공무원단과 국방개혁 로드맵이다. 국방개혁 로드맵도 성격이나 가는 과정에서 전시작전권도 걸려있어서 큰 부분이다. 방위사업청도 국방획득제도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 정책의 법제화 및 실질화는 거의 끝났다.

사회 갈등요인은 언제나 생기지만, 정부 정책으로 인해 갈등요인이 생기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

경제만... 경제가 잘 될수록 걱정이다. 하방효과가 늦기 때문이다. 상반기 지표는 분명하지만 밑에는 하반기에 가야 효과가 나타나니까. 구조적인 것은 이 정부 내에서 다 하기는 힘들고.

-- 지방선거 전에 경기가 살면?.

▲ 그런 것을 겨냥하고 말고를 떠나서 추세가 그렇다는 것이다. 지난해 1/4분기를 가장 안 좋게 예상했었다. 상반기를 지나면서 좋아졌다.

-- 1월 스케줄은

▲연두회견이 있을테고, 불가피한 개각이 있을테고.

-- 개각 시기는

▲ 좀더 봐야 한다. 구체적으로 논의된 적이 없어서.

-- 금명간 하는 것 아니냐.

▲ 압박을 느낄 필요가 없다. 연초니까. 내일부터 들어가 봐야지. 오늘 오후에 가서 낮잠이나 즐기셔...

-- 근데 천지교태라는건 무슨 뜻인지.

▲ 양극화 해소를 하는 것이 천지교태 아니겠느냐. 정치. 사회적으로 큰 갈등이 없으면 천지교태지. 내년에는 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에 국론이 갈라질 가능성은 있지만 그것은 정치적 이벤트로서 당연하고, 다른 사회적 갈등은 미리 준비하고 많이 끝나지 않았느냐.

작년에 천성산, 방폐장 문제가 있었는데 다 해결됐고 새만금 같은 경우도 고법에서 판결이 났고, 8.31 부동산대책도 국회를 통과했다. 또한 과거사도 작년에 법제정이 끝났고, 이제 그것으로 크게 나뉘어 질 일은 없다.

기자들이 전망을 미리 얘기해 줘야지. 오늘 떡국 값은 해야 하는 것 아니냐.

경제는 내수 쪽은 착실히 갈 것 같다. 그간 내수 쪽이 안 살았는데, 주식시장이 저런 것은 자산소득을 벌려놓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소비로 연결되는 구조다. 옛날처럼 단타매매 구조도 아니다.

자산에 여유가 생기므로 소비에 대한 경계심이 달라질 것이다. 11월 산업활동 동향을 보면 조금씩, 그리고 기업실사 지수를 봐도 낙관적으로 보는 면이 있다. 분위기까지 상승작용하면 효과가 더 커질 수 있다.

-- 정부는 주가 얘기하지만 일부 컬럼에서..우려도 하는데...

▲ 나도 봤다. 일부 걱정은 있다. 펀드 중심, 게임으로 하는 자산 등. 근데 투자내용이, 어떤 투자자가 어떤 패턴으로 어떤 주식을 사느냐를 보는 것이다.

-- 있는 사람들만 소득이 늘어난다는 것 아닌가요.

▲ 거꾸로 말해서 어느 계층에서도 자산소득이 안 늘땐 얘기가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양극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내수가 활성화돼야 중소기업이 투자한다. 큰 기업이 투자해봐야 별로라니까...

근데 몇몇 신문 여론조사를 보니까 성장이 70몇%, 분배가 20몇%라고 하던데 그건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이분법으로 나눠선 안 된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은 국민부담률이 50%가 넘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가 건실하게 가느냐 와는 다른 문제다.

우리는 수출, 증산, 건설의 사고와 패턴이었으므로 성장 외에는 없었다. 국민소득 1만5천불을 보니까 구매소득에 의한 국민소득은 유럽의 85∼90년 수준이다. 당시 그 나라들이 어떻게 가고 있었느냐. 성장. 분배 논리는 아니다. 어느 계층의 소비력을 잃게 하지 않아야 위로 올라가는데 이분법은 위험하다.

가령 사학법의 경우 (여론조사를 할 때) 학교 경영이 투명한 게 좋냐, 불투명한 게 좋냐, 폐쇄적인 것이 좋냐, 공개적인 것이 좋냐 하면 공개 쪽에 90% 이상의 답변이 나오게 돼있다.

중층화 된 우리 사회 구조를 보려면 여론조사를 심층적으로 해야 한다.

-- 문재인 수석은 그만 두나요.

▲ 난 그런 얘기 들어본 적 없다.

-- 건강이 안좋다고 하던데요.

▲ 청와대 근무하는 사람들은 다 건강이 안 좋다. 건강이 좋다고 하기는 어렵겠지.

-- 거취에 변화가 있는 것 아닌지요.

▲ 특별히 들은 바 없다.

-- 수석들 개편이 있지 않나요.

▲ 실장 등 참모들이 그런 부분, 인사권자의 영역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

 

이 실장은 내내 핵심을 벗어나 변죽만 울렸다.

오후 2시경 비서실장 공관에서 나와 춘추관으로 이동한 기자들은 대부분 방심했다. 이실장의 얘기대로 개각은 월요일인 2일부터 논의를 시작해 그 다음주 초반인 9일이나 10일 경 발표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사고가 터졌다.

몇몇 신문(중앙일보,한국일보,한겨레)의 1면 톱에 ‘5개부처 개각 빠르면 오늘 발표’라는 제목의 기사가 뜬 것이다. 매일경제는 ‘5개부처 개각‘ ’김우식씨 과기부총리 유력‘이라는 제목의 개각 예고 기사는 있었지만 오늘 발표라는 앙꼬는 빠져 있었다.

 

아침부터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을 찾는 타사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새벽 5시경 방송 기자의 첫 전화를 받은 김 대변인은 그때까지도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그럴 리가 없다’고 큰소리까지 쳤다. 확인 결과 그날 오후 발표가 맞았다. 김 대변인은 모르고 있었던 꼴이고 이 실장은 ‘엄청난 거짓말’을 한 셈이었다.

 

실제 2일 오후 2시 김완기 청와대 인사수석이 춘추관에 내려와 개각 내용을 발표했다. 과기부총리에 김우식 전 대통령비서실장, 통일부장관에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사무차장,산자부장관에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겸 임시당의장, 노동부장관에 이상수 전 열린우리당의원 등 4개부처였다. 보건복지부장관에는 유시민 열린우리당의원이 사실상 내정됐으나 발표를 일단 보류한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인사 내용을 정확하게 집어 아침 신문에 전했다. 복지부장관 발표 보류 사실은 물론 빗나갔지만 인선 내용은 맞췄다.

 

기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몇몇 신문에만 개각 발표 사실이 난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로 당일 점심식사 자리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이 ‘개각은 내일이후부터 논의 시작하니 낮잠이나 자라’고 했던 발언때문이었다.

 

내막은 이랬다. 통일, 복지 두 장관의 사표로 요인이 생긴 1차 개각은 과기부, 노동부 정도를 더해 4개 정도 발표되는 그림이었다. 시점도 1월 첫주 후반이나 둘째주 초반이었다. 그런데 노대통령이 1월1일 저녁 갑자기 부속실에 앞당길 것을 지시했다. 이병완 비서실장도 1월1일 밤 9시 경 부속실의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다음날 오전 인사추천회의를 앞당겨 개최하고 대통령께 인사안 재가를 올리라는 내용이었다.

 

결국 1일 밤 11시 전후 전화로 고위관계자들에게 마와리(일본어로 돌아다닌다는 뜻)를 했던 기자들은 다음날 인사 발표를 건졌고 나머지는 고스란히 물을 먹은 것이었다.

 

이날 인사를 둘러싼 특종과 낙종은 개각 발표 후 다른 신문의 논조에서 불똥과 후폭풍으로 반영됐다. 또 하루 지나 김완기 인사수석의 또 다른 식언과 더해져 기자들의 분을 고조시켰다. 김 수석은 시위중 사망 농민의 책임과 관련해 줄다리기 끝에 낙마해 공석이었던 경찰청장 인선에 대해 이 실장처럼 ‘다음주나 돼야 가능할 것같다’고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풀 기자에게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경찰청장 역시 그 얘기를 했던 그날 밤 급박하게 앞당겨져 다음날 발표됐다.

 

연초 벽두부터 인사를 둘러싼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의 식언에 기자들은 격앙됐다.

김만수 대변인에게 이를 정식으로 항의하는 기자들이 생겼다. 김 대변인은 고개를 숙인채 제대로 대꾸를 못했다. 그리고는 한마디만 던졌다. “대변인을 돌로 치십시오. 이번 일을 복기해가며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노력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