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청와대 취재 수첩

2006년초 청와대 취재 비망록 2

joon mania 2015. 8. 8. 21:48

2006년초 청와대 취재 비망록 2

 


<유시민 의원 보건복지부장관 발탁 파동>


 


노무현 대통령은 처음부터 유시민 의원을 보건복지부장관에 앉혀 일을 시키고 싶었다. 연초 개각에 앞서 이를 언론에 슬쩍 흘렸다.여론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국민들은 냉소적인 반응도 보였다. 유시민 장관설을 두고 골프장에서는 이미 비웃는 의미의 유머가 나돌 정도였다.(퍼팅을 하는 상대에게 유시민이 복지부장관 된다며? 하고 골지르는 얘기를 하면 백발백중 퍼팅에 실패하더라는 식의 유머였다.)


 


정작 열린우리당 의원들 내부에서 반응이 싸늘했다. 초재선 의원 그룹을 중심으로 유의원 입각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노대통령은 1월2일 개각 발표때 유의원 입각을 제외한채 일단 보류토록 했다.일부 의원들의 반발 강도는 더욱 세졌다. 이종걸, 조배숙, 김영춘, 송영길 의원 등 18명의 초재선 의원들이 유 의원 입각에 반대한다는 연판장에 공동으로 서명했다.


 


청와대는 유시민 카드에 대해 슬쩍 다시 고려하는 듯한 입장도 흘렸다. 김만수 대변인은 ‘반반’이라는 표현을 썼다. 일부 신문(한국일보) 가판에는 유시민 카드 철회라고 성급하게 기사를 띄웠다가 바꿨다. 당쪽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 대통령이 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러 만찬을 함께 하는 자리를 갖겠다고 발표했다. 1월 5일 저녁으로 시간을 잡았다. 초청대상은 열린우리당 비상집행위원들과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대변인 등 21명이었다.


유의원 입각에 대한 반발은 정작 딴 곳으로 불똥이 튀었다. 유의원과 함께 입각하게 된 정세균 원내대표 겸 임시당의장에 대해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 것이다. 정 대표가 장관에 눈이 멀어 자존심 버리고 덥석 수락한 것으로 당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고 초재선 의원들은 정 대표를 쏘아붙였다.정대표는 곤혹스러워졌다. 당혹함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서글서글한 웃음마저 사라지게 만들었다.정대표는 당초 인사청문회를 진행하는 한달여 동안 임시당의장을 겸임할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가 당내 반발에 밀려 하룻만에 임시 당의장 자리를 내놓았다. 당내에 반대세력이 없었던 정대표는 하루아침에 스타일만 구기고 불명예스럽게 장관 자리를 맡은 셈이었다.


모두 유시민 의원 입각에 대한 당내 불만의 후유증이었다. 일각에서는 정대표의 산자부장관 입각은 유시민 복지- 이종석 통일 카드에 대한 반발을 물타기 하기 위해 쓴 고단수 카드라는 분석도 있었다. 그랬다 하더라도 정 대표 입각 자체가 또 하나의 상처를 남겼다.


 


당의 반발이 거세지는 가운데 노 대통령은 4일 오후 3시 전격적으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을 김완기 인사수석을 통해 발표토록했다. 오후 2시 40분경 김만수 대변인이 갑자기 기자실로 달려와 이를 알렸다. 의외였다. 다음날 저녁 만찬에서 당측 의견을 듣고 반발을 무마시킨 뒤 발표하겠다는 입장에서 전면적으로 밀어부쳐 버린 것이다.


당쪽에서는 격앙됐다. 노대통령과 이번 기회에 결별해야 한다는 극단론까지 나왔다. 반면 이화영 의원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참여정치연구회 소속 그룹들은 유의원 입각을 지지한다는 주장으로 맞섰다.


결국 5일 저녁 만찬은 새로운 지도부 구성이후로 미뤄졌다. 당측 지도부가 이날 아침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연기를 요청했고 청와대가 받아들였다. 사실 유 의원 내정을 발표해 버린 상황에서 만나서 얘기를 나눠봐야 별로 소용이 없게됐다. 김만수 대변인은 유의원 입각을 둘러싼 문제만이 아니라 연초 국정운영 전반에 대해 당측과 의견을 주고 받는 자리이니 새 지도부를 구성한 뒤에 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재건 의원이 새 임시당의장에 뽑힌 뒤 일주일 뒤인 11일 만찬은 이뤄졌다.


 


유의원 입각 파동으로 온나라의 시선이 쏠려 있을 때 사학법 개정안 반대에 목소리를 높이던 일부 사학 가운데 제주지역 5개 사립고교에서 신입생 배정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6일이었다. 청와대와 정부는 즉각 강경대응으로 나섰다. 관선 이사 파견은 물론이고 사학에 대한 감사원-교육부 등 유관 부처의 합동 감사를 즉각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하룻만인 1월 7일 해당 사립학교들은 입장을 철회했다. 청와대와 정부의 강공에 투항했다. 유시민 파동으로 궁지에 몰렸던 노대통령과 청와대는 이 일로 다소 숨을 돌렸다.


 


그 즈음 노대통령의 측근 중 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리는 윤태영 연설기획비서관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유시민 의원 입각은 오래전부터 준비된 대통령의 생각이라는 글을 올려 주목을 끌었다.


윤 비서관은 노 대통령이 정세균, 천정배, 유시민 등을 차세대 또는 차차세대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장관직을 경험케 하는 등 배려한다는 내용의 글을 던졌다. 야당과 열린우리당 일각 그리고 보수언론에서는 차세대 지도자 키우기라는 표현을 두고 시비를 걸었다.


 


아래 글이 윤태영 비서관이 1월8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준비하는 대통령’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국정일기 전문이다.


 


2004년 2월, 문희상 비서실장이 총선 출마를 위해 사의를 표명하자, 대통령은 김우식 당시 연세대 총장을 신임 비서실장으로 기용했다. 정치인 등 여러 인물이 하마평에 올랐지만, 대통령은 곧바로 김우식 총장의 임명 절차를 진행했다. 그 후에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후임 비서실장 인사가 예정된 것은 그로부터 몇 달 전, 그러니까 2003년 11월경의 일이었다. 대통령은 차기 비서실장의 컨셉을 내각과 각종 인사를 총괄할 ‘관리형’으로 정하고 그에 적합한 인물을 사실상 내정해두었던 것.


1년 6개월 후인 2005년 8월, 이번에는 김우식 비서실장의 사의 표명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대통령은 정무관계수석회의를 소집해 이병완 전 홍보수석을 신임 비서실장으로 기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역시 김우식 실장의 퇴임에 대비해 다음 비서실장은 ‘정무형’이 좋겠다는 판단 하에 대통령이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카드. 실제로 이병완 신임 비서실장이 대통령으로부터 자신의 기용 의사를 들은 것은 이로부터 두 달 전인 6월의 일이었다.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은 이처럼 중요한 자리의 인사를 가급적 미리 준비하고 내정한다. 그것은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이나 정치적 행보의 모색이 긴 호흡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호흡, 대통령의 시계


대통령은 최근 ‘대통령의 시계’, 또는 ‘대통령의 달력’을 종종 언급한다.


“그전에는 보통 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대통령이 되고 나니 다른 시계를 차게 된다. 내가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대통령의 위치에서 보니 시야가 더 넓어지고, 그런 만큼 더 먼 장래의 일까지 생각하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대통령의 미래담론 구상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3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12월 16일 저녁, 긴급하게 정무관계수석들을 만찬에 불러, 사학법 통과에 따라 만일에 있을지도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고 지시한 것 또한 비슷한 맥락의 일이 아닐까? 그렇게 먼 장래는 먼 장래대로, 1년의 계획은 1년의 계획대로, 또 당면한 과제는 당면한 과제대로 챙기는 것이 대통령의 일상이다.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준비하는 사람’이다. 사안에 따라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준비를 시작한다. 어떤 말을 어느 계기에 할 것인지, 청와대에서 가장 먼저 생각을 시작하는 사람이 바로 대통령이다. 새해 초가 되면, 연두회견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며 2월 25일 계기에는 어떤 화두를 던질 것인지 미리 구상한다. 나아가 3.1절, 광복절, 그리고 가을의 국회연설까지 큰 틀에서 메시지의 대강을 잡아놓는다. 올해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그 모든 일이 준비하고 구상한 대로 진행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중간에 끼어들면서 사안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도 많다. 2004년 총선 직전, 대통령은 선거의 결과로 야당 또는 야당연합이 국회의 과반수를 점할 경우 총리지명권을 넘기겠다는 입장을 밝히려고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뜻하지 않은 탄핵 사태로 인해 무산되었다. 그리고 이 제안이 이루어진 것은 지난 해 4.30보궐선거로 여당의 과반수가 무너진 이후의 일이었다. 대연정이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된 이 제안은, 총선 직전과는 달라진 환경 등으로 인해 그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예정되지 않았던 변수들 때문에 여러 가지 복잡한 해석이 생겨나고 또 그것이 다시 사태를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기 마련이다.


 


차세대 그룹 적극 기용은 미래에 대한 준비


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 역시 대통령이 오래 전부터 예정하고 준비해온 사안 가운데 하나이다. 대통령이 유시민 의원의 입각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7월 정동영, 김근태 장관을 입각시킬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통령은 당의 차세대 또는 차차세대를 이끌고 갈 지도자의 재목으로 정세균, 천정배, 유시민 의원 등을 주목하면서 장차 이들을 입각시켜 국정경험을 풍부하게 쌓도록 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 이들이 역량 있는 지도자감이라는 것은 그 전후에 있었던 당내 선거를 통해 원내대표나 상임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는 사실이 충분히 입증하고 있다.


유시민 의원의 경우, 대통령의 입장에서 볼 때 여러 가지 면에서 주목할 만한 요건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다. 우선 유시민 의원은 보건복지위 활동 등을 통해 나름대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대중성을 갖추고 있다. 개각 전후에 실시된 어느 여론조사를 보면 유시민 의원의 입각에 대해 20대에서는 67%, 30대에서는 49%가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반응은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유시민 의원이 우리 정치에서 일정한 여론을 반영하고 있는 인물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통령의 이러한 판단은 무엇보다 대통령 스스로가 레임덕을 두려워해 차세대 지도자를 키우는 데 소극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통령 자신이 국민의 정부 시절 해양수산부장관을 역임하면서 국정의 경험을 체득했듯이, 차세대그룹에게는 가급적 기회를 열어주면서 경륜을 쌓도록 해야 한다는 확고한 인식이다. 앞으로도 대통령은 앞서 언급한 인사들 외에 우리 정치의 미래를 이끌어 갈 차세대그룹을 기회가 되면 적극 기용할 생각을 갖고 있다.


물론 그동안 유시민 의원이 기간당원제도 등 당헌·당규의 개정 과정에서 갈등의 한 축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상주의적 관점에서 원칙을 관철하려는 측과, 현실적 조건을 수용하자는 측의 인식 차이일 뿐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며, 그 어느 한 쪽의 잘못으로 규정짓기 어렵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다. 나아가 그런 문제로 인해 갈등과 감정이 생겼다 해도, 그 자체가 입각의 장애사유는 될 수 없다는 것이 대통령의 판단이다. 일례로 대통령은 2003년 당시 청와대의 인사 쇄신 등을 주장하여 한때 관계가 다소 불편해지기도 했었던 천정배 의원을 법무부장관에 적극 기용했다.


유 의원의 입각을 둘러싸고 갈등이 적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이처럼 ‘준비하는 대통령’이 오랫동안 검토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차세대 지도자들은 우리 정치와 국가의 중요한 자산이다. 이들이 경험을 쌓고 더욱 성숙해지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은 대통령이 나라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해야 할 기본적인 일이다. 더 이상 소모적인 정치적 논란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