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컬럼

[데스크 칼럼] 정치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세요(2010.8.16)

joon mania 2015. 8. 8. 22:09

[데스크 칼럼] 정치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세요(2010.8.16)


"권위적 힘 가진 이가
제한된 자원 배분하는게
정치 본연의 기능
약자 배려하자는 정책
일회성 열풍 머물지 말길"
 

지금은 경제신문에서 일하지만 기자의 대학시절 전공은 정치학이었다.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 정치라는 게 뭔지, 정치학이라는 학문이 뭔지 몰랐다. 돌아가신 이극찬 선생님의 명저 `정치학` 책에 밑줄을 그어가며 공부했다. 이극찬 선생님은 머리말에서 "정치학자의 수만큼 정치학이 있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같은 고대 철학자들의 명귀에서 정치의 의미를 끌어낸 학자들이 있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오르테가 가세트의 대중론이나 라이트 밀스의 파워엘리트론으로 연결됐다. 

여러 학설 가운데 신참 정치학도의 눈길을 잡은 이는 데이비드 이스턴이었다. 그는 저서 `정치 체계론`에서 명쾌하게 정리했다. 정치란 `한 사회에서 가치(value)를 권위적으로 분배(authoritative allocation)하는 일`이란다. 기자로 20여 년을 보낸 요즘도 이스턴의 정리에는 무릎을 칠 만큼 공감한다. 

미국의 정치학자 헤럴드 라스웰도 "정치란 제한된 자원을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나눠주느냐의 문제"라고 동조했다. 

이들의 정의에는 두 가지 요소가 핵심이다. 나눠줄 대상인 가치 있는 자원이 있다는 것과 권위를 가진 주체가 그걸 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치를 갖는 자원이라면 당연히 많지 않아야 한다. 희소성을 말한다. 돈이든 물건이든 자리든 누구나 갖고 싶어하고 갖기 힘들어 다툼을 벌여야 할 지경이어야 한다. 

배분은 권위적 힘을 가진 주체가 해야 한다. 권위적이란 구성원들에 의해 구속력과 힘을 인정받는다는 의미다. 

지난달 말부터 열풍처럼 불고 있는 대-중소기업 상생과 협력 방안을 보면서 기자는 이스턴의 정치에 대한 정의를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교과서에서 배웠던 `정치`의 역할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대-중기 상생을 대통령이 챙기니 모두 바쁘다. 경제팀 장관들은 한 술 더 떠 기업들을 옥죈다. 

권위를 가진 주체가 나선 때문인지 마른 수건 짜는 식으로 협력ㆍ하도급 업체를 몰아붙이던 대기업들은 속속 성의를 표하고 있다. 삼성, 현대차와 LG, 포스코 등 뒤질세라 연일 새 방안을 내놓는다. 1차 협력 업체 범위를 확대하고 2, 3차 협력업체에도 현금 결제를 늘리겠다고 하는가 하면 저리로 자금 지원도 하겠단다. 

이 대통령은 최근 들어 `서민들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고, 중소기업도 열심히 한 만큼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하고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사회`라고 부쩍 강조한다. 11일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는 "힘 있는 사람들이 공정하게 해 약자가 숨 쉬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8ㆍ15 경축사에서의 국정 운영 메시지도 기회의 평등과 공정한 경쟁을 강조하고 부자와 대기업의 `배려`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주문할 예정이라고 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대-중소기업 상생 방안을 몰아붙이는 데 대해 또 다른 포퓰리즘이라고 비난을 퍼붓는다. 기자는 이런 지적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동안 몇 번의 칼럼에서 대통령이나 집권당 정책에 좀처럼 박수를 보내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적극 밀어주고 싶다. 

한국의 기업 구조에서 `갑`의 자리에 있는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하도급 업체들에 자기들이 먹을 걸 내놓을 리 없다. 그동안 역대 정권마다 대-중기 상생을 요구했지만 무위였다. 이번에 다시 열풍이 몰아친 걸 보면 얼마나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대기업들이 이번에도 한순간 불고 있는 태풍 피하듯 대응한다면 실망이다. 정부도 박수 좀 받는다고 우쭐하다 그치면 안된다. 

이 대통령과 해당 부처 장관들이 이번 만큼은 제대로 해냈으면 좋겠다. 국민에게 시원하게 느끼게 해줬으면 한다. 정치란 한정된 가치를 제대로 배분하는 일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권위적 분배를 할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 

[윤경호 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