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컬럼

[데스크 칼럼] 차라리 엽관제를 선포하라(2010.7.2)

joon mania 2015. 8. 8. 22:07
[데스크 칼럼] 차라리 엽관제를 선포하라(2010.7.2)
"공직에서 민간에까지
전리품 나누듯 앉히려면
공개적으로 엽관제 택한 뒤
정권 끝날 때 물러나는게
떳떳하고 구리지 않다"

지나간 일이지만 옛날 얘기 좀 해야겠다. 요즘의 인사 관련 때문이다. 

참여정부 중반이던 2005년 벽두 노무현 대통령은 장관 몇 명을 교체했다. 바뀔 거라고 예상했던 이헌재 재경부 장관은 유임됐고, 전혀 거론 안된 안병영 교육부 장관을 경질했다. 후임은 이기준 전 서울대 총장이었다. 

언론의 반응은 차가웠다. 이 전 총장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다. 재산문제, 병역문제, 학문적 업적 등 도덕성과 연결된 이 전 총장의 치부가 드러났다. 그는 일주일여 포화를 맞은 끝에 낙마했다. 

노 대통령과 비서실장을 포함한 참모들에게 책임론이 제기됐다. 참여정부는 임기 절반을 남겨둔 상태였는데도 절름발이 거위(레임 덕)로 추락해버렸다. 

기자는 그 전후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이기준 인사 파동이 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었음을 절감했다. 

취임 후 기존 언론과 긴장관계를 유지하겠다며 거리를 뒀던 노 대통령은 2004년 말부터 참모들에게 슬그머니 언론과의 막후 접촉을 용인하기 시작했다. 비공식 만남이 활발해졌다. 그전까지 언론을 `소 닭 보듯` 하던 태도와 180도 달라졌다. 

그러나 조금씩 녹아가던 분위기가 이기준 인사 파동으로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노 대통령과 참모들은 더 움츠러들면서 막후 접촉을 접었고 담을 더 높게 쌓았다. 언론은 아무리 좋은 정책에도 비판의 칼을 댔다. 참여정부는 치르지 않아도 될 비용을 덤으로 썼다. 

5년 반 전의 상황을 꺼낸 건 이명박 대통령과 참모들에게 감히 조언 한마디 하려는 취지에서다. 

기자는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에 무조건 딴지를 걸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관이나 수석은 마음에 맞는 이들을 재량껏 기용해야 한다고 본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부하를 곁에 두고 있다면 일은 훨씬 잘 굴러갈 수 있다. 

반면 장차관, 법관 같은 관직은 안배할 필요가 있다. 지역, 세대, 성별 등을 적절히 배합하고 힘 약한 세력(마이너리티)도 끌어안아야 한다.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같은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는 곳의 인사에도 탕평과 `수위 조절`이 있어야 한다. 

KB금융지주 회장에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이 선임된 뒤 쓴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민간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 자리인데도 청와대와 이 대통령의 뜻이 반영된 거라는 비판이다. 이 대통령과 그의 사적 인연 때문일 거다. 

돌아보면 MB정권 초기에도 인사 때마다 `강부자` `고소영` 등의 비아냥식 조어가 유행했다. 천성관 전 검찰총장 내정자 청문회 때 이미 `스폰서 검사`라는 오명이 국민들에게 익숙해졌다. 

이 대통령은 그때마다 `덜 때묻은` 다른 사람으로 바꿔 넘어가면 된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국민들이 그걸 받아들이는 것으로 생각한지 모르겠다. 그러나 인사를 우습게 보면 결코 국정 운영에 성공할 수 없다. 지난 6ㆍ2 지방선거의 표심도 그렇게 나타났다. 

이런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하고 싶은 대로` 인사를 하려 한다면 차라리 엽관제(獵官制)를 공식 선포하라고 권하고 싶다. 관직을 놓고 사냥에서 짐승을 잡으려고 서로 다투는 듯 하는 거니 모양은 안좋다. 1860년대 미국의 마시라는 상원의원이 말한 것처럼 `전리품은 승리자의 몫(To the victor belongs the spoils)`이라는 생각의 연장이다. 

공직에서부터 민간 부문에 이르기까지 대통령과 정부의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 자리라고 전리품 나누듯 쓸어가려면 아예 엽관제를 선포한 뒤 내놓고 자기 사람을 앉히라는 얘기다. 대신 정권이 끝날 때 함께 물러나면 된다. 그게 되레 떳떳하다. 

중남미 방문을 마치고 귀국할 이 대통령이 청와대와 장관급 인사에서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