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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포럼/전속고발권에 묻힌 소비자 권리 (2012.9.4.)

joon mania 2015. 8. 8. 23:06
매경포럼/전속고발권에 묻힌 소비자 권리 (201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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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율 1%대 그친 공정위 조치
기업에 면죄부 논리는 옛 얘기
담합시비 분야 생활속 크게 늘어
전속고발권에 연연하지 말고
소비자 피해구제 제대로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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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속고발권이라는 게 일반에 알려진 건 1994년이다. 

현대 등 4개 백화점이 식품류의 가공 날짜를 조작해 판매하다 걸렸다. 그해 7월 검찰이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을 의뢰했다. 공정위는 시정명령에 과징금만 물렸을 뿐 고발하지 않았다. 이른바 전속고발권에 의거한 결정이었다. 소비자단체들은 재판청구권 침해라며 반발했다. 구매자들을 내세워 그해 9월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소는 전속고발권을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전속고발권은 가격 담합 등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해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 수사가 가능토록 한 제도다. 법 위반 시 행정조치로 충분한지, 형사제재가 필요한지 전문기구가 일차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 도입됐다. 일본 공정거래법을 참고했다. 조세범처벌법, 관세법, 출입국관리법, 항공법 등에도 전속고발권이 있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공정위가 발족한 1981년 이후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한 검찰 고발은 전체 처리 사건 가운데 평균 1.5% 정도에 불과했다. 매출 기준 100대 기업이 검찰에 고발된 건 20여 건에 그친다. 나머지는 모조리 중소기업이었다. 전속고발권이 대기업의 방패막이 노릇을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공정위는 담합 사실을 자진신고하고 조사에 협조한 업체를 고발 대상에서 제외한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소위 말하는 `리니언시`다. 일본에서는 공정위에 전속고발권을 주고 리니언시를 활용하더라도 입찰 담합이나 가격 카르텔 같은 중대 사안을 적시해 형사고발을 의무화했다. 우리 공정거래법엔 "경쟁질서를 현저히 저해한다고 인정되는 경우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고 모호하게 규정돼 있을 뿐이다. 법리상으로 따지면 리니언시 운용고시인 시행규칙과 상위법인 공정거래법의 상충 논란도 있다. 

이런 전속고발권을 폐지하자는 주장은 벌써 오래됐다. 19대 국회에서도 여야 가리지 않고 전속고발권 폐지를 담은 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따져보면 전속 고발권은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규정이다. 미국의 경우 검찰만 수사와 기소권을 갖고 있을 뿐 연방거래위원회(FTC)에는 이런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EU 등 유럽에서는 경제활동 과정에 발생한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를 관행적으로 형사처벌로 다루지 않는다. 

공정위의 반론도 일리는 있다. 기업들의 법위반 행위를 경찰이나 검찰에서 마구 다루면 경제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공정위 조사에 유용한 수단인 리니언시제도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그러나 전속고발권을 둘러싼 상황과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요즘엔 라면, 우유, 휴대폰, TV 등을 비롯해 보험 등 서비스 상품까지 도처에서 담합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따라서 소비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피해구제를 위해서 전속고발권 제도를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불법행위로 규정해 기업에서 거둬들인 과징금은 국고에 귀속되니 피해 당사자들에 대한 구제와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공정위의 판단 전에 직접 담합행위 중단을 법원에 청구하거나 공정위의 고발 없이도 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수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과거처럼 대기업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나 면죄부 같은 논리는 이제 뒤로 밀려 있다. 

동반성장이나 상생에 대한 여론의 지지에서 보듯 요즘엔 대ㆍ중기 공정 거래나 소비자 권익 옹호에 힘을 실어주자는 데 박수가 많이 나온다. 전속고발권 폐지 주장은 공정위에 부여된 권한을 제대로 행사해서 소비자 보호를 위해 보다 더 엄격한 조치를 취하라는 주문이다. 

소비자나 기업이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 불공정거래 행위를 중단시켜 달라는 소송을 낼 수 있게 하는 `사인의 금지청구` 제도를 새로 도입하자는 것도 같은 취지다. 전속고발권 폐지를 부르짖는 이들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나 소비자 집단소송제 도입에도 함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 않은가. 

[윤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