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컬럼

매경포럼/ 정부조직 또 뜯어고칠거면… (2012.10.9.)

joon mania 2015. 8. 8. 23:07

매경포럼/ 정부조직 또 뜯어고칠거면… (201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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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면 커도 된다던 참여정부

말로만 작은정부론 외친 MB정부

새 집권세력도 정부조직 손댈 터

이해집단에 밀리거나 표 연연말고

국민이 공감하는 결과 내놓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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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를 부활시킨다고 한다. 해양부도 다시 만들고, 중소기업부 신설을 말한다. 대선후보마다 중구난방이다. 그렇지만 뚜렷한 원칙은 아직 안 보인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참여정부는 역대 가장 비대한 조직을 운영했다. 5년간 9만여 명의 공무원을 늘렸다. 정부 산하 위원회만 416개에 달했다. 일만 잘하면 커도 상관없다는 철학이었다. MB정부는 정반대 방향을 외쳤다. 출범 초기 대부처대국 원칙을 내세웠다. 말로는 작은 정부론이었으나 과기부 대신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만들었고, 정보통신부에서 하던 일을 방송통신위원회에 맡겼다. 


이번 대선에서 누가 집권하든 정부조직을 또 뜯어고칠 때 몇 가지는 감안하라고 조언하려 한다. 


첫째, 본질을 따져보지 않은 채 이질적인 업무를 합치는 건 금물이다. 정부 정책의 두 얼굴인 규제와 진흥이 한 부처에서 동시에 다뤄지는 엇박자는 피해야 한다. 과거 정보통신부는 IT산업 진흥을 맡았고, 전파 배분 등 규제는 방송위원회 몫이었다. MB정부의 방통위는 규제와 진흥을 다 담당하려다 실패했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를 담당할 독임부처를 만들더라도 집행부처와 의결기구는 따로 둬야 한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유사한 소지가 있다. 에너지 생산기업 육성은 진흥이지만 환경보호 측면의 규제가 함께 다뤄져야 한다. 일부 선진국에서 환경부와 에너지부를 합치는데 아직 에너지를 인프라로 더 구축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선뜻 따라 할 일이 아니다. 해양수산부처럼 외형상의 공통점만 보고 하나에 담는 것도 안 된다. 해양은 물류와 서비스 측면에서, 수산은 1차산업 육성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바다라는 장소의 공통성만 있을 뿐 전혀 이질적이다. 


둘째, 이젠 국가의 장기 비전을 다룰 상설 부처가 필요한 시점임을 인정해야 한다. 과거 개발연대에서의 경제계획과는 다르다. 미래의 국정어젠더를 상시적으로 맡겨야 한다. 현재 기획재정부의 기획과 예산 업무에 장기 비전 파트를 얹는 조직이 될 수 있다. 이렇게 기획과 예산을 떼가면 재정과 금융은 다시 합치는 게 맞다. 요즘엔 금융 정책의 중요성은 줄어들고 리스크 부담만 커진다. 오히려 감독 기능이 더 부각된다. 지난 외환위기 후 출범시켰던 금융감독위원회와 감독이라는 두 글자가 빠진 현재 금융위원회의 차이를 정부조직을 뜯어고치려는 이들이 아는지 궁금하다. 국제 금융은 재정부에서, 국내 금융은 금융위가 나눠 맡는 지금의 구도도 꼴불견이다. 


셋째, 당선자가 나오면 인수위원회 완장을 차고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를 텐데 즉흥적인 결정은 금물이다. MB정부 인수위는 산업담당 부처에 지식경제부라는 엉뚱한 이름을 붙였는가 하면 방통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겠다며 노조 핑계를 대고 우정사업본부를 업무와 무관한 부처에 떠넘겨 버렸다. 이런 식의 우를 반복해선 안 된다. 


정부조직은 결국 관료제다. 관료제(bureaucracy)라는 용어를 1745년 처음 만든 프랑스 경제학자 V 구네는 요즘의 정부조직을 미리 예견한 듯하다. 사무용 책상을 뜻하는 bureau와 통치를 뜻하는 cratia를 합쳤으니 참 예리하다. 우리에겐 관료제 하면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익숙하다. 그는 `합법적 권위가 반영된 조직`이 관료제라고 했는데 무슨 뜻인지 잘 와닿지 않는다. 차라리 영국의 정치학자 해럴드 라스키처럼 `특권적 정치권력집단`으로 보는 게 더 현실적이다. 공무원들에게는 새 정부가 들어서서 장ㆍ차관 자리 몇 개가 늘어나는지 줄어드는지가 더 큰 관심거리일 것이다. 갖고 있는 권한을 얼마나 빼앗기는지에 목을 맬 것이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르다. 정부조직을 뜯어고쳐 대민 서비스를 얼마나 개선했느냐가 중요한데 이건 나중에 지나봐야 알 수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정부조직 손대봐야 국민들만 더 피곤해진다면 안 하는 게 더 낫다. 


[윤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