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현대차 잘나가지만
소니 신화 붕괴를 보면
선도자 자리의 부담 읽힌다
새 대통령 뽑는 일 만큼
한국경제 받칠 두 기업의
지속성장이 더 걱정된다
일본 전자업체에 내린 조치였는데 왜 내 가슴이 철렁했는지 모르겠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지난달 소니와 파나소닉의 신용을 투기등급으로 떨어뜨렸을 때 말이다. 그들은 한때 너무 잘나갔다. 멀리 앞서 가 있는 1위였다. 특화된 기술과 제품으로 큰소리를 쳤다. 그러나 국제표준이나 세계시장의 요구를 무시했다. 결국 고립됐다.
소니의 전설은 가장 화려했다. 1979년 7월 1일 거실에 놓여 있던 오디오 세트를 손바닥 크기로 줄여 내놓았다. 걸어 다니면서 음악을 듣는다는 워크맨이라는 이름의 휴대용 카세트 재생기는 2010년 단종될 때까지 2억2000만대를 팔았다. 헤드폰족이라는 신조어는 워크맨 덕분에 생겼다. 텔레비전으로는 30여 년을 석권했다. 1980년대 가정용 캠코더, 1990년대 플레이스테이션, 2000년대 디지털카메라로 이어갔다. 그런 소니가 무너진 것이니 충격이다.
애플과 삼성전자 간의 특허 소송을 보면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와 패스트 폴로어(fast follower)의 역할을 다시 따져본다. 세계 1위 업체의 신제품을 벤치마킹해 더 나아진 제품을 내놓는 전략은 우리 기업들에 딱 맞았다. 세계 1위 기업의 지위는 너무나 버겁다.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서는 한 번의 잘못된 투자 결정으로 무너져버린다. 일본 전자업체는 이를 잘 보여줬다. 차라리 패스트 세컨드(fast second)가 부담없다. 발 빠른 2등으로 최강자를 쫓아가는 게 더 실속 있다. 퍼스트 무버의 조건은 만만치 않다. 세계 시장을 선도할 기술과 특허권, 시장을 지배하는 표준을 가져야 한다. 한 치의 빈틈도 없어야 후발 주자에게 추월을 허용하지 않는다.
싸이월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페이스북보다 퍼스트 무버였다. 아이리버는 MP3플레이어의 선구자였다. 그런데 실패했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협소한 내수시장에다 국내 기업이 세계 소비시장의 중심인 미국의 문화 코드를 맞추기 어려워 퍼스트 무버 전략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퍼스트 무버로 성공한 기업의 가장 큰 위험은 기존 상품과 전략에 안주하려는 `승자의 저주`라는 그의 분석은 탁월하다.
피치가 소니의 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주요 제품의 선도자 역할이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밝힌 대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소니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1위 자리`의 부담을 읽는다. 삼성전자나 현대차가 소니 위에 덧씌워져 그려진다.
삼성전자는 세계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에서 23.7%로 1위다. 노키아와 애플을 뒤에 두고 있다. 현대ㆍ기아차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8.6%로 5위까지 올라섰다. 도요타, GM, 폭스바겐, 르노닛산이 앞서지만 하나씩 제쳐가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달 말 140만원을 넘어 역대 최고점을 경신했다. 증권사들은 목표주가를 170만원대까지 제시한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차 시가총액은 합쳐서 70조원을 돌파했다. 글로벌 자동차제조업체 가운데 3위다. 둘 다 거침없이 앞만 보고 잘 달려간다.
그러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현실도 있다. 삼성전자의 국내 휴대폰 시장 점유율은 71.4%까지 높아졌다. 연말엔 80%를 넘길 것이란다. 현대차ㆍ기아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81.6%다. 중대형 승용차만 따지면 89.2%로 더 올라간다. 10명 가운데 9명은 같은 회사 자동차를, 10명 중 7명은 한 제조회사 휴대폰을 사는 것이다. 소비자들의 선택이겠지만 놀랍다. 이 정도의 독과점이니 국내 소비자 위에 군림한다는 얘기를 듣는 게 아닐까.
18대 대선이 보름 남았다. 앞으로 5년간 대한민국호를 이끌어갈 선장을 뽑아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삼성전자와 현대ㆍ기아차는 10년, 20년 이상 한국 경제를 떠받쳐야 하는 기둥이다. 새 대통령을 뽑는 일만큼이나 두 기업의 지속성장이 중요하다. 삼성전자와 현대ㆍ기아차는 과연 세계 1위를 감당할 기본을 갖추고 있을까.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답답하다.
[윤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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