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컬럼

[매경포럼] 사과나무는 누가 심나(2014.3.11.)

joon mania 2015. 8. 10. 16:34
[매경포럼] 사과나무는 누가 심나(2014.3.11.)

 


임명직 공직자들 대거 사퇴
규정 위반 아니지만 씁쓸해
지방선거후 치를 보궐선거때
자진사퇴한 원인제공자에게
선거비용 부담토록 법 바꿔라



수줍은 산수유 꽃망울이 고개를 들었다. 봄을 알리는 전령을 보면서도 정치판 얘기를 다루는 게 아쉽다.

지난 6일 마감해 보니 지방선거에 출마하려고 사퇴한 공직자가 150여 명에 달했다. 4년 전에 비해 줄었고, 지방의회에 도전하려는 5~6급 출신이 절반이라니 그래도 나아졌다. 

하지만 시한 하루 전에 그만둔 안전행정부 장관이나 선출직 시장이 손을 놓아버렸는데 뒤따라 그만둔 춘천과 전주 부시장들을 보면서는 화가 치밀었다. 임명직으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과실을 따먹은 뒤 제 갈 길 가는 얌체처럼 보였다. 

국회의원이나 교육감 같은 선출직이야 말릴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유감이다. 그동안 교육행정을 맡다가 도지사를 하겠다니 본래부터 정치에만 뜻이 있었나 싶다. 법에 정해진 규정을 위반한 건 아니니 당사자들은 떳떳하겠지만 씁쓸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을 지방선거에 차출하지 말았어야 했다. 행정부 장관급으로는 그가 유일했고 선거 주무부처 수장이었으니 더욱 그렇다. 선거에 나설 거였으면 진작 그 자리를 던졌어야 했다. 출마 선언 때 불쑥 던진 말을 보면 박 대통령 의중에 따라 후보로 나섰을 텐데 유감이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 사표를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출마할 생각이었으면 정 총장이 애초부터 그 자리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국회의장 임명을 받는 입법공무원 수장이니 의장과 임기를 같이했어야 했다. 두 사람 모두 3선 국회의원 경력으로 본래 정치인이지만 하필 임명직 자리에 있었다는 원죄 때문에 하는 얘기다. 


중진 차출에 여론조사에 의한 공천 등 새누리당 선거 전략을 보면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자치 정신은 이미 사라졌다. 선거에서 이기는 게 정당의 목표인데 무슨 시비냐고 물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라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집권 여당이니 이렇게 걱정하는 거다. 당장 지방선거 승리만을 위해 만사에 베팅하는 행태야 야당이라고 다르지 않지만 임명직 권한이 더 크니 여당에 주로 시비를 거는 거다. 

살고 있는 동네 어귀에 얼마 전부터 이런 플래카드가 내걸려 있다. `살림 참 잘했다고 평가해줘 상받았습니다`. 안전행정부가 전국 시ㆍ군ㆍ구를 대상으로 한 평가 결과라고 한다. 이걸 자랑한 구청장 의도처럼 지방선거는 살림 잘할 사람을 뽑는 일이다. 그런데 지방선거가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로 바뀌었다. 살림꾼을 뽑아야 하는데 전문적인 정치꾼을 선택하는 판으로 변했다. 


새누리당 측 그림대로 후보들을 정하면 6~7곳에 보궐선거 요인이 생긴다. 민주당 쪽 2~3곳을 더하면 10여 곳으로 늘어난다. 이번에는 당장 법을 바꿔 공직선거를 다시 하게 만든 원인 제공자와 소속 정당에 선거비용을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 이를 약속했고,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도 지난해 7월 이렇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부정부패에만 국한할 게 아니라 다른 선거 출마를 위한 자발적 중도 사퇴에도 적용해야 한다. 

지금은 EU의회에 합쳐졌지만 유럽 국가에서는 도입된 지 오래다. 17ㆍ18대 국회에서만 다시 치른 선거 때문에 혈세 280억원이 국가 재정에서 쓰였다. 지방자치 민선5기(2010~2014년)에도 29회에 달했던 재ㆍ보궐 선거에서 관련 비용을 해당 지자체에서 부담했다. 2000년 이후 국회의원과 지방자치 재ㆍ보궐 선거에 쓰인 돈은 1800억원에 달한다. 


더 이상 국가와 지자체 재정을 털어 메워서는 안 된다. 정치의 계절이다. 선거의 계절이다. 2월 임시국회 때 잠시 민생, 경제 살리기 운운하더니 역시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집권 여당에 묻는다. 


철학자 스피노자가 400년 전 던진 화두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묵묵히 사과나무를 심을 이는 누구인가. 있는 자원 다 긁어다 써먹은 뒤에 뒤치다꺼리는 어떻게 하려나. 원칙과 대의는 다 무너져도 지방선거에서만 이기면 되는 건가. 


[윤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