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컬럼

[매경포럼] 헌법을 다시 읽는다(2014.5.20.)

joon mania 2015. 8. 10. 17:00
[매경포럼] 헌법을 다시 읽는다(2014.5.20.)



대통령과 공무원에 부여한
국민보호 책임 다하지 못했다
국가와 정부가 잃은 신뢰부터
되찾아야 공동체 유지된다



세월호 참사 후 대한민국 헌법을 다시 읽는다. 


국가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워서다. 국민의 권리가 뭔지, 합당한 대접을 받았는지 의심스러웠다. 


대통령 책무에 대한 여러 쓴소리 때문에도 관련 규정을 들춰봤다. 


출발은 제1조 2항이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돼 있다. 국가의 구성은 국민, 영토, 주권이다. 사전에서 보면 국가는 `일정한 영토와 거기에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에 의한 하나의 통치 조직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다. 


통치조직을 정부로 해석한다면 결국 주권자인 국민이 국가의 핵심이다. 그래서 헌법에는 국민의 권리와 의무가 상세하게 규정돼 있다. 제2장 10조부터 39조까지 이걸로 채워져 있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 때 정부 행태를 보면 헌법에 아무리 많은 조항을 두고 있어 봐야 말짱 소용없다. 


헌법 제10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전제한 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문화했다. 그런데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했으니 불가침의 인권이 심대하게 침해된 셈이다. 


헌법은 제4장에서 정부의 의무를 세세하게 제시한다. 국민의 권리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이다. 먼저 대통령의 임무부터 명확하게 새겨놓았다. 제66조 2항에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ㆍ영토의 보전ㆍ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고 했다. 4항에는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고 명시했다. 


정부에 대한 실망이 대통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는 건 당연하다. 제69조에는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선서할 문구까지 정해 놓았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되풀이해서 읽어봐도 대통령의 책무 가운데 첫째는 `헌법 준수`와 `국가 보위`다. 국가의 원수로서 헌법 수호의 최일선에 나선 첨병이자 마지막 보루여야 한다. 수호되어야 할 헌법 가치 중에 국민의 생명과 신체보다 더 내세울 게 뭐가 있겠나. 


어제 내놓은 대국민 담화에서 "사고에 대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는 말은 진작에 수십 번 반복했어도 부족하다. 제7조 1항에서는 공무원에 대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렇지만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해양경찰 등 일선 공무원들이 보여 준 자세에서 국민은 헌법과는 동떨어져 있는 현실을 확인했다. 이런 실망과 비난 여론이 반영돼 해당 기관이 폐지되고 업무를 다른 곳에 이관토록 조치됐다. 파격적이지만 한편으론 뒷북치기다. 


다른 건 다 넘어가더라도 두 조항만은 되새겨 보자. 먼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한 제34조 6항이다. 제30조는 `타인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명ㆍ신체에 대한 피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헌법에 번지르르하게 문구만 마련해 놓으면 뭐하나. 대한민국에서 재난관리법은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과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후에야 제정됐다.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를 겪고 나서는 부처 간 업무를 통폐합해 `재난 및 안전 관리기본법`으로 정비했다. 


그래도 아직 예방과는 무관하다. 사후약방문일 뿐이다. 다시 꼼꼼히 보니 첫 페이지 전문(前文)에 `…우리들과 우리들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헌법을 마련했다고 쓰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우리들 자손의 안전을 지켜내지 못했다. 대한민국 헌법 규정이 다시는 `장롱 속 문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할 텐데. <윤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