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컬럼

[매경포럼] 공기업 경영평가 유감(2015.6.23.)

joon mania 2015. 8. 11. 14:13
[매경포럼] 공기업 경영평가 유감(2015.6.23.)

 


광물사장에 내린 불명예 조치는

잔칫상 따로 설거지 따로

전임자의 분탕질 선 긋지 않는한

공기업 개혁 자체가 흔들릴수 있다





메르스 사태 치다꺼리하는 걸 보며 대한민국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싹 사라졌다. 어쩌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나 싶어 한숨만 나오다가 화가 치밀어오른다. 

보건과 방역 구멍에 분통 터져 있는데 지난주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2014년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보고도 기가 막혔다. 박근혜정부 초기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공기업 파티는 끝났다"며 의기양양했다. 그래 봐야 큰소리만 들렸지 과감한 칼질을 보지는 못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체제에서 공기업 개혁은 아예 뒷전으로 밀렸다. 청와대의 의중인지, 정치인 출신 부총리의 의지인지 모르지만 달라졌다. 이번 평가 결과에서 잘 읽힌다. 

발표를 보면 116개 공공기관 중 D등급은 9곳, E등급은 6곳이다. 이 중 9곳에 대해서는 기관장이 부임한 지 6개월이 안 됐다고 면죄부를 줬고, 3곳에 기관장 해임 건의, 3곳엔 경고 조치를 내렸다. 광물자원공사를 기관장 해임 건의 대상으로 삼은 건 놀라웠다. 2012년 8월 취임한 고정식 사장은 오는 8월이면 임기를 다하고 물러날 예정이다. 같은 처지인 최평락 중부발전 사장도 7월에 임기가 끝이니 묘하다. 

광물자원공사에 대한 계량 지표만 보면 혼내줄 대상이 맞다. 당기순이익에서 2013년 189억원이 2014년 -2635억원으로 곤두박질쳤다. 부채도 3조5000억원에서 4조원으로 늘었고 부채비율 역시 207%에서 220%로 뛰었다. 악화된 내역을 설명하면 이렇다. 광물공사는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 광산에서 2014년부터 생산 규모의 70% 이상을 의미하는 상업생산(Ramp-Up)을 시작했다.대규모 광산이나 플랜트 사업은 상업생산 전까지는 발생되는 원가를 자본화하고 상업생산 시부터는 감가상각해 비용 처리한다. 2014년에 감가상각비로 1225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올해엔 설계치의 90%까지 가동되고 있으니 감가상각비는 더 늘어난다. 

멕시코 볼레오 동광 광산도 최초 10% 소수주주였다가 MB정부 때 지분을 74%까지 늘리는 바람에 물려버렸다. 5000억원대 손실을 피해보려다가 더 큰 수렁에 빠졌다. 총투자비 1조1000억원의 사업에 9000억원의 대부 투자를 출자로 전환하면서 2014년 한 해에만 323억원의 이자수익이 줄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광물자원공사의 투자비 중 80%가 암바토비와 볼레오 사업 몫이었다. 고 사장은 전임자의 분탕질을 뒤치다꺼리하느라 투자와 업무 시간을 거의 투입한 걸로 보면 된다. 재임 중 단 한 건도 자신의 선택에 의한 신규 사업을 해보지 못하고 이전 사업을 정리하고 정상화하는 데 진력하다 해임 건의까지 받았다. 영락없이 `잔칫상 받는 사람 따로, 설거지하는 사람 따로`다. 

투자 자본 회임 기간이 최소 10년을 넘기는 사업 성격을 감안하면 광물자원공사 처지는 딱하다. 과다한 부채와 낮은 수익성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국내만 담당하던 광업진흥공사에서 해외 사업까지 하라며 광물자원공사로 이름과 역할을 바꾼 뒤로는 더 심하다. 이런 점을 감안하지 않고 수익성만 따지는 경영평가로는 공감을 얻기 어렵다. 

수익성 악화는 채찍을 때릴 대상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전임자 때 이뤄진 잘못된 투자 후유증으로 부실해진 지표를 빌미로 후임 경영진에 책임을 묻는 것은 불합리하다. 전임 김신종 사장 시절엔 내리 A(2008·2010년) 아니면 B(2009·2011년)만 받다가 후임 고정식 사장 취임 후 E(2012년) C(2013년) E(2014년)등급으로 내려앉은 평가는 누가 봐도 객관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자원외교를 내세워 투자에만 열을 올렸던 전임자는 칭찬받고, 이때의 투자 결정으로 생긴 부실 책임을 후임자에게 씌우는 건 정의에도 어긋난다. 이런 `영혼 없는` 평가를 한 담당자들은 무슨 판단을 했을까. 

정부는 매년 공기업에 인센티브와 페널티를 주며 제대로 경영하라는 이른바 `당근과 채찍` 전략을 쓴다. 그러나 정권 사업에 첨병으로 나서면 좋은 점수를 주고, 묵묵히 뒤치다꺼리하면 희생양으로나 삼는 공기업 경영평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이런 식의 잣대로 진행하는 공공부문 개혁은 그 자체가 부질없다. 

[윤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