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컬럼

[매경포럼] 장발장은행에 보내는 박수(2015.3.10.)

joon mania 2015. 8. 10. 18:24
[매경포럼] 장발장은행에 보내는 박수(2015.3.10.)

 


벌금형 받고 낼 돈 없어
감옥에 가는 가난한 이들
내가 보내는 작은 돈으로
그들의 자유를 구한다면
함께사는 세상 만드는거다



문 열고 이틀 만에 2000만원이 모였다. 보름 동안 266명이 5360만여 원을 보내왔다. 몇천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십시일반이다. 


장발장을 떠올리듯 은촛대를 보태는 심정이라며 돈을 보낸 이도 있다. 이 돈으로 벌써 17명에게 3000만원을 지원했다. 


장발장은행이라는 구호단체 얘기다. 국세청의 허가를 받고 설 연휴 직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명칭에 은행이 붙어 있지만 이자놀이를 하거나 돈을 굴리지 않는다.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 돈이 없어 대신 감옥에 가 몸으로 때워야 하는 가난한 이들이 이 땅에 없도록 하자는 취지로 세워졌다. 벌금 액수만큼 빌려주고 무이자에 6개월 거치, 1년 균등 상환하도록 한다. 


대출 대상에서 살인·강도·성폭력·뇌물 사건과 상습범은 제외된다. 소년소녀가장이나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극빈층을 우선한다. 


첫 대상자로 뽑힌 4명의 사연은 절절하다.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A씨는 교차로에서 낸 교통사고로 신호 위반 벌금 100만원을 받았다. 돈을 못 내 감옥에 가면 심장병 수술을 받은 아내와 두 아이가 굶어야 하니 발을 동동 구르다 장발장은행 고객이 됐다. 압류된 살림살이에 붙은 딱지를 훼손했다가 벌금 150만원을 내야 하는 기초생활수급권자 B씨도 선정됐다. B씨는 낼 돈도 없지만 치매까지 앓고 있다. 가벼운 상해죄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은 C씨는 돈을 못 내 감옥에 가면 홀로 남아야 하는 아홉 살 된 아들 때문에 한숨만 쉬다 장발장은행의 품에 안겼다. 


대출심사위원회는 죄질과 소득 상태, 가족관계나 질병 같은 특수 상황을 따져 17명의 신청자 가운데 좁혔다고 한다. 


천주교 산하 인권연대라는 단체가 몇 년 전부터 `43199` 캠페인이라는 운동을 벌여왔다. 한 해(2009년 기준) 벌금형을 받고 낼 돈이 없어 감옥에 간 이들이 4만3199명에 달했던 기막힌 현실을 보고 시작했다. 


현행법상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30일 이내에 현금으로 한 번에 완납해야 한다. 분납이나 일시연장 제도가 있으나 특별한 이유에만 예외로 적용되니 당장 현찰이 없으면 교도소행을 면치 못한다. 하루 수감으로 제한 돈은 5만원. 법 규정의 취지는 노동 차압인데 실제로는 신체 차압이다. 해당자 가운데 도로교통법 위반 사범이 대다수다. 


그러나 생계에 허덕이거나 미성년자여서 돈을 낼 수 없으면 사회에 해를 끼칠 나쁜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감옥에 가야 한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공동체로부터 외면받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돈이 교도소 담장 안팎을 가른다. 


그런데 십시일반 모은 부조로 사람을 구한다. 궁극적으로 그의 자유를 구한다. 국가가 빼앗아가려는 자유를 장발장은행이 지켜준다. 하지만 시비도 없지는 않다. 가볍더라도 범죄는 범죄인데 벌금을 안 낼 경우 교도소에 보내 죗값을 치르게 하는 교화 작업의 본뜻을 살릴 수 없다. 돈을 빌려간 이가 감옥행을 피했으면서 대출금도 안 갚으면 은행의 재원은 고갈될 수 있다. 


그럼에도 장발장은행 덕분에 1명이라도 불행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10명이 못 갚아도 의미가 있다는 홍세화 은행장의 말은 가슴을 울린다. 


현행법처럼 소득이나 재산 상태와 상관없이 동일한 벌금액을 부과하는 총액벌금제에서는 형벌 불평등을 피할 수 없다. 북유럽 국가에서 택한 소득 수준에 따라 벌금을 차등화하는 소득누진벌금제는 이를 보완하려는 의도다. 다른 접근 방법이지만 일수벌금제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죄질에 따라 부과하는 일수를 따로 정하고, 1일 벌금액 단위는 소득과 재산 상태에 맞춰 결정하는 방식이다. 


어떤 고민을 해서든 재산 불평등이 형벌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사회를 만들지는 않도록 해법을 찾아야 한다. 장발장은행 출범 회견문에는 이런 논의를 응축해 이렇게 표현했다. "돈이 자유를 빼앗아가는 세상을 한 뼘이라도 밀어내고자 한다." 


장발장은행은 시민의 기부액에 비례해 은행 구실을 할 수 있다. 내가 보내는 적은 돈으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구할 수 있다면 한번쯤 관심을 가져볼 일이다. [윤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