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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포럼] 이중국적 두 잣대 (2016.1.14.)

joon mania 2016. 1. 14. 08:54

[매경포럼] 이중국적 두 잣대 (2016.1.14.)

 자녀 국적문제에 공관장은 소환조치

교육장관은 회복 약속만으로 넘어가

형평성 안맞고 개운치도 않다

선천적 복수국적 규정도 고쳐서

'코메리칸 오바마' 나올 길 터주자

 

우리나라 국적법은 속인주의를 원칙으로 한다. 출생 때 부모 중 한쪽이라도 한국인이면 자동으로 한국 국적을 갖는다. 부모 양계 혈통주의다.

한국 국적이었는데 자진해서 외국 국적을 취득하면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다. 외국인도 한국 국적을 취득할 경우 6개월 내에 본래 국적을 포기해야 하며 이를 행하지 않으면 한국 국적을 잃는다.

이중국적 보유는 한국 사람으로 미국 같은 속지주의를 택하는 나라에서 태어나야 가능하다. 그나마 1998년 개정된 국적법에서는 20세 이전에 이중국적이 된 사람은 22세 이전에, 20세 이후에 이중국적을 갖게 된 사람은 2년 내 하나의 국적을 선택하도록 돼 있다. 이를 이행치 않을 경우 자동적으로 한국 국적을 상실하게 된다.

남자의 경우 국적을 포기해 군대 안 가는 걸 막기 위해 국적법 외에 병역법으로도 엄격하게 묶어 놓았다. 이중국적을 가진 한국 남자는 만 18세 되는 해 3월 31일 전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병역대상자에 편입된다. 병역을 면제받거나 병역의무를 마치고 나면 2년 안에 원하는 국적을 선택할 수 있다.

법무부 통계를 보면 군대 가지 않으려고 한국 국적을 포기한 이중국적자가 2014년과 2015년에만 각각 한 해 1000여 명씩이다. 이중국적이면서 병역의무를 이행한 이는 30여 명에 불과했다.

국적 규정 악용을 막기 위해 2005년 개정된 이른바 `홍준표법`에서는 원정출산이나 군대 안 가려 국적을 포기한 경우 38세 이후에도 한국 국적을 회복하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군대 안 가려 한국 국적을 포기한 미국 시민권자 가수 유승준 씨는 15년째 국내에 발도 못 붙이는 가혹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공직사회에서는 자녀의 이중국적 문제로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주 청문회를 했던 이준식 교육부 장관은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택한 차녀의 한국 국적을 회복시키겠다고 공언했지만 구속력이 없으니 그냥 넘어간 셈이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장녀도 미국 유학 중 현지에서 출생해 미국과 한국 국적을 함께 갖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시비 없이 넘어갔다.

2014년 초 재외공관장 인사 때 청와대는 이중국적 자녀를 둔 고위 외교관 4명에게 국적 회복을 조건으로 대사에 내정했다. 그러나 1년 반 지나도 국적을 회복하지 않자 외교부는 대상 공관장들을 임기와 상관없이 지난해 말 소환 조치했다.

다 자랐거나 결혼까지 한 자식에겐 현실적으로 국적 회복을 강요하기 힘들 것으로 짐작된다. 더욱이 그 책임을 부모에게 돌리는 건 위헌적 요소가 다분하다는 지적도 있다. 요즘 같은 글로벌시대에 자녀 이중국적을 문제 삼아 외교관의 공관장 임명을 배제하는 건 국제사회에서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고위직 외교관의 이중국적 자녀는 150여 명에 달하니 분란의 소지는 더 많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같은 공직자에게 두 잣대를 적용한다는 데 있다. 부총리인 교육부 장관 자녀의 이중국적은 받아들여지고, 재외공관장에겐 가혹한 제재를 가하는 건 형평성에 안 맞는다. 고위 공직을 맡으려면 병역기피 논란을 부를 아들의 이중국적은 깨끗하게 정리한 뒤 나서는 게 맞는다. 하지만 병역의무와 무관한 딸에게도 무차별적으로 덧씌워지는 질타는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우리 재외동포는 181개국에 걸쳐 720만명에 달한다. 광복 전 떠난 중국, 일본, 옛소련 등의 400만명을 빼면 320만여 명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이민이나 유학을 가 현지에 정착한 이들이다. 미국 교민사회에서는 우리 국적법의 선천적 복수국적 규정이 한인 2세의 미국 내 주류사회 공직 진출에 불이익을 받는 요인이라며 개정 요구가 거세다. 당사자의 선택으로 정리할 수 있겠지만 복수국적 이민자나 후손에게는 한층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나라 케냐 국적이 자동말소돼 아무 지장 없이 대통령까지 된 버락 오바마 같은 환경을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선천적 복수국적이 이민 2세, 3세에게 족쇄로 작용한다면 풀어주는 게 맞는다. 그래야 코메리칸에서도 오바마의 후예가 나올 수 있다.

[윤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