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량의 0.25%만 거래되는 이상한 온실가스 배출권 시장 (2016.06.25.)

2015년 1월부터 우리에게는 생소했던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시장이 한국거래소에 새로 개설됐다. 주식이나 채권, 선물 등 금융상품과는 다른 온실가스 배출권이라는 무형자산이 새로운 거래 품목으로 등장한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정부가 기업마다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정해주고 이를 초과한 기업은 온실가스 배출권을 거래시장에서 구입하도록 한 제도다. 유럽연합(EU)에서 먼저 시작됐다.
배출권을 구입하지 않고 허용량을 초과해 배출하면 초과한 양만큼 배출권 평균 가격의 3배를 과징금으로 내야 하는 만큼 구입 수요가 당연히 많을 것으로 예상됐으니 거래도 많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배출권 거래제는 3년 단위로 운영되는데 시장을 개설한 2015년 1월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가 1차연도 시행 기간이다. 업체들은 남는 배출권을 다음해로 이월하거나, 모자라는 배출권을 다음해 할당량에서 차입할 것을 결정해야 한다. 이월·차입 보고 기한이 6월 10일까지이니 이날로 사실상 마무리됐다. 시장 개설 이후부터 이날까지 거래된 배출권 물량은 410만t으로 정부가 예상한 거래 규모(1400만t)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2017년까지 배출하도록 525개 기업에 사전 할당한 배출권 총량 15억9772만t의 0.25%에 불과하다.
통계를 보면 배출권 할당 대상 기업 523개 가운데 288개는 2000만t 정도 여유가 있었던 반면 235개는 1300만t가량 부족했다. 그런데도 거래 물량이 410만t에 그쳤다는 것은 시장에서 정상적으로 거래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현상은 당연히 매수와 매도 양측 간 불균형 때문이다. 배출권이 부족해 사겠다는 기업만 있을 뿐 여유가 있어서 팔겠다는 기업은 없다는 의미다.
원인을 따져보자면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정부 주도의 배출권 거래제도에 대해 기업들이 제대로 호응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기업이 배출권을 시장에 내놓을 경우 마치 부과된 할당량에 여유가 있는 것으로 오해를 받아 나중에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어서다.
2017년까지 진행되는 배출권 거래제 1차 계획기간에는 기업들이 정부로부터 배출권을 100% 무상으로 할당받는다. 2018~2020년의 2차 계획기간에는 기업이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량 중 97%만 무상으로 할당되고, 나머지 3%는 비용을 치르고 할당받아야 한다. 2021~2025년의 3차 계획기간 무상할당량은 90%로 줄고 나머지 10%에 비용을 들여야 한다.
하지만 정부와 기업의 시각차는 크다. 1차 기간 산업계가 정부에 신청한 배출권 할당량은 20억2100만t이었으나 실제 할당량은 15억9800만t에 불과했다. 신청분과 할당분의 차이인 4억2300만t에 대해서는 비용을 치르고 배출하라는 얘기다.
현대제철, SK머티리얼즈, 동양시멘트, 한국타이어, 금호석유화학 등은 배출권 할당량이 부족하다며 정부를 상대로 배출권 할당처분 취소 소송을 내기도 했다. 현대제철이 2015년 12월 이미 패소 판결을 받아 다른 업체들의 승소 가능성도 낮다.
배출권을 구하지 못한 기업들을 위해 정부가 배출권 예비분 90만t을 6월 초 시장에 공급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배출권 거래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6월부터 배출권 거래제 총괄 업무를 환경부에서 기획재정부로 이관했다. 또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내년에 할당된 온실가스 배출권을 올해 미리 사용할 수 있도록 차입한도를 10%에서 20%로 확대하도록 했다.
이런 변화를 기점으로 기업들이 앞으로 배출권 거래제를 환경 관련 규제로 보지 않고 신산업의 하나로 받아들여 달라는 게 정부의 바람이다. 아직은 온실가스 감축 수단이지만 네덜란드처럼 금융상품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대신 아예 탄소세를 신설하자는 쪽도 있다. 2013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탄소세를 신설하자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온실가스 감축은 환경보호를 위한 규제이지만 친환경에너지 개발은 미래를 향한 신산업이다. 두 가지 목표의 조화가 관건이다.
[윤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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