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필동정담] 비혼식(非婚式)(2018.10.31.)

joon mania 2018. 10. 31. 08:42

[필동정담] 비혼식(非婚式)(2018.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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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었을 때 한번 더 되물어야 할 정도로 생소한 표현이었다. 젊은이들 사이에선 익숙하다고 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정말 그랬다. 비혼식(非婚式)이라는 용어 얘기다.
대외적으로 부부가 됨을 선언하는 공개적인 의식이 결혼식이라면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겠음을 선포하는 의식을 치른다는 것이다. 비혼식 청첩장을 받은 이들은 여느 결혼식에 가는 것처럼 축의금 봉투를 갖고 간다. 일각에서는 결혼도 안 하면서 그동안 건넸던 축의금을 회수하려는 행사가 비혼식이라고 손가락질도 한다. 그래서 비혼식엔 축의금을 거절하거나 받은 돈을 기부하는 이들이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싱글 웨딩 혹은 나 홀로 웨딩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당사자들을 유인한다. 턱시도나 웨딩드레스를 입고 혼자 연단에 서거나 결혼식만큼 화려한 의식으로 꾸며 제공한다.

비혼식을 치르는 이들의 생각은 이렇다. 연애는 하고, 동거도 할 수 있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적 족쇄에 채워지는 것은 거부한다. 결혼 이후엔 임신, 육아로 이어지는 가정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지기 싫다. 배우자 가족과 새로 쌓아야 하는 관계도 부담스럽다. 이런 속박 대신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원하는 활동에 전념하면서 자유로운 인생을 즐긴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미혼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미혼과 비혼은 엄연히 다르다. 미혼은 결혼을 원하지만 아직 안 한 것이라면, 비혼은 결혼을 아예 할 계획도 의사도 없는 경우다. 비혼을 택하는 이들이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한 것일 뿐 틀린 선택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무리 그래도 삼포세대, 오포세대 등에 담긴 대한민국에서 살기 위해 포기해야만 하는 몇 가지에 결혼이 있다면 이건 심각한 문제다.

비혼식에는 결혼식과 분명히 다른 한 가지가 있다. 결혼식은 혼주라는 이름으로 부모가 전면에 나서고 하객을 맞지만 비혼식은 본인의 행사로 치른다는 점이다. 결혼의 주체는 자식인데 봉투 들고 눈도장 찍으러 가는 하객은 부모와 관련된 이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비혼식은 이런 기성세대의 결혼 문화에 대한 젊은 세대의 은유적 저항일지도 모른다. 결혼식이 본인 중심 행사로 바뀌면 역설적으로 비혼식 자체가 줄어들지 않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