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트 페테르부르크>
1703년 러시아의 왕 피터는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새로운 곳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준비를 거쳐 1716년 수도를 옮겼다. 초창기에는 유럽 특히 독일의 영향을 받아 도시 이름을 페테르부르크로 정했다. 1914년 도시 이름은 페트로그라드로 1924년에는 레닌그라드로 바뀌었다. 레닌이 이곳에서 짜르 체제를 무너뜨린 혁명의 서곡을 울렸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진뒤 1991년 레닌그라드는 다시 원래의 이름 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간다.
피터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제정 러시아를 선포하고 황제로 등극한다. 이 때부터 러시아는 유럽 국가들과 어께를 견주면서 강자로 부상한다. 러시아 왕 피터는 이후 황제로 불렸다. 피터대제(PETER THE GREAT)다. 그는 키 2미터3센티의 장신에 발길이만 37센티의 거구였다.
피터대제는 아버지 이반왕의 둘째 부인 아들이었다. 당초 아버지는 첫 부인의 아들과 그를 1왕,2왕으로 책봉하고 첫부인의 딸 소피아에게 섭정을 맡겼다. 왕궁에서 함께 생활하지 못한 피터는 궁밖에서 생활하면서 지인들로부터 조선술, 항해술, 화약제조기술 등 16가지에 이르는 신기술을 직접 배웠다.
그는 17세때 누나와 형을 몰아내고 마침내 왕에 올랐다.
유럽에 눈을 돌리고 유럽을 배우자는 것이 피터의 목표였다.
자신이 직접 설계해 만든 배를 타고 항해에 나섰는가 하면 네덜란드에 순방을 보낸 사신들 틈에 변장하고 직접 참여해 선진 문물을 둘러보고 와 직접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순방을 마치고 오자 그는 종래의 긴 수염을 자르도록 했고 거추장스러운 긴 옷도 줄이도록 명령했다. 여성들의 사회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연회에 여성들을 불렀다.
학교를 만들고 해군을 신설했다. 지금도 러시아 해군의 중심은 발틱함대이고 본부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있다.
현재의 문자를 개량했고 최초의 활자 신문도 그 때 만들어졌다. 영토확장을 위해 스웨덴과 전쟁해 승리했다.
사치를 일삼은 자신의 부인을 황후에서 폐위시켜 수도원에 유배시켰고 우크라이나 출신의 가난한 농부의 딸을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아들을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고 황위 계승자에서 제외시켜버릴 정도로 비정한 면도 있었다.
피터 대제는 유럽으로 진출하기 위해 발트해에 붙어 있는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수도로 정했다. 그래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유럽의 주요 도시를 본 따 만들었다.
피터를 이은 여걸 에카테리나 여제는 영토를 적극적으로 넓혔다.
1812년 나폴레옹은 러시아를 침공했다. 영국을 겨냥해 나폴레옹이 내린 대륙봉쇄령을 러시아가 깨고 영국을 지원하자 응징에 나선 것이다. 러시아와 프랑스간에 펼친 모스크바 근교에서의 보로진 전투는 프랑스가 이겼지만 훗날 나폴레옹이 가장 두려웠떤 전투였다고 술회할 만큼 치열했다. 나폴레옹 침공을 받은 러시아는 67세의 쿠드초프 장군을 사령관으로 전 국민이 방어에 나섰다. 쿠드초프는 유명한 모스크바 소개작전으로 프랑스군을 끌어들인 다음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나폴레옹군에게 역습을 가해 물리쳤다.하지만 이때의 소개작전으로 모스크바의 70%가 불탔다. 나폴레옹군 60만명 가운데 살아돌아간 병력은 5만명에 그쳤다고 한다. 러시아인들은 나폴레옹과의 전쟁을 조국전쟁이라고 부른다.
나폴레옹은 러시아에서의 패배를 기점으로 몰락의 길로 들어가 1814년 엘바섬에 귀양간다.
대부분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으로 대체된 유럽에서 러시아의 알렉산더 2세는 나폴레옹의 빈자리를 잡으며 맹주로 부상한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얼핏보면 베니스와 비엔나를 합쳐놓은 듯 하다. 강과 운하 67개 그리고 365개의 다리가 어우러진 고풍의 도시다.
러시아 4대 강(볼가, 네바,드네프르, 보로프) 가운데 하나인 네바강 위를 가로지르는 14개의 다리를 합쳐 모두 365개 다리가 도시에 있다. 네바강의 다리는 새벽 1시30분부터 5시 사이에 양쪽을 들어 올려 배들이 지나가도록 공간을 만들어준다.
모스크바까지 운하와 강을 이용해 뱃길로도 갈 수 있다.
유람선을 타고 돌아보는 도시 풍경도 멋있다. 베니스의 곤돌라와 비슷하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발원지로 불리는 피터 & 폴 요새.(페뜨로 & 파블로스키 크레포스진).이곳에 있는 성당은 황제들의 무덤이다. 자야츠키(토끼의 의미)섬에 있는 이 요새는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외적의 침공으로부터 막기 위해 만든 곳이다.
피터대제는 이곳을 정작 정치범 수용소로 만들어 자신의 아들을 수감시켰다.
요새 안에 있는 성당은 1712년부터 1833년까지 건설됐다. 121.8미터의 첨탑이 1850년 세워졌다. 꼭대기에는 십자가와 비둘기가 자리잡고 있다.
요새 마당에 있는 피터 대제의 철체 좌상은 재미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미국으로 망명했던 한 작가가 만든 이 좌상의 피터 대제 두상은 몸집에 비해 지나치게 작다. 과거 사회주의 체제 시절 제정 러시아에 대한 부정의 역사를 강조했던 그들이 근대 러시아에 한 획을 그은 피터대제 조차 부정적으로 평가한 데 대해 작가가 일침을 가한 것이란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 청사 앞에 있는 니콜라이 1세 기마상 건너편에는 성 이삭 성당이 있다. 프랑스 건축가 몽테랑이 1818년부터 1858년까지 40년에 걸쳐 만들었다는 성당이다.
성당 건물 높이 101.5미터다. 돔형식 성당으로는 세계에서 4번째로 높다고 한다.
성당 건축의 백미는 1층 사면에 높이 17미터에 무게 114톤의 엄청난 화강암 기둥 48개가 건물을 받치고 있다는 점이다. 제대로된 기중기를 갖고 있지 않았던 당시 나무와 지렛대만으로 어떻게 이렇게 육중하고 거대한 기둥을 건물에 세워 지었는지 불가사의다.
한번 더 놀라게 한다. 높이 43미터의 두번째 단에 1개에 67톤의 기둥 24개가 다시 건물 상층부를 이루고 있다. 아래 기둥도 놀랍지만 윗 기둥을 어떻게 세웠을지 궁금하다. 건축 과정을 보여주는 자세한 묘사도가 성당안에 전시돼있다.
성당 외곽을 둘러 이어지는 외곽 통로를 194개의 계단을 통해 올라갈수 있다. 194개 가운데 150개는 돌판과 둥그런 통이 이어져 있어 이를 하나의 고리에 끼우듯 만들어진 계단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동서남북으로 상트 페테르부르크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제정 러시아 궁전은 겨울궁전과 여름궁전이 각각 따로 있다. 겨울궁전은 평소 머물던 곳으로 페테르부르크 시내에 있다. 현재 에르미따쥐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페체르코프에 위치하는 여름궁전은 러시아말로 페트로 뜨바레츠라고 부른다. 시내에서 자동차로 1시간여 떨어져 있다. 황제는 마차로 이동했다고 한다.
1천 헥타아르, 우리식으로 300만평 규모다. 여의도의 3배 정도로 보면 된다.
부근에 있는 호수에서 물을 끌어다 낙차를 이용해 상단, 하단에 걸쳐 둘로 구분해 놓고 모두 64개의 분수를 만들어놓았다. 각각 특징과 모양을 달리하는 분수는 장관이다. 재치도 넘치고 아이디어도 보인다. 가운데 삼손의 상에서 나오는 물은 19미터까지 뿜어나온다.
5월부터 10월까지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파이프를 열어놓아 분수가 가동하도록 해 놓았다.
수압을 이용하는 만큼 항시 물을 틀어 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호수에서 끌어온 물은 아래 공원을 거쳐 바다(발트해)로 흘러가 버린다.
아래공원 끝에 붙어 있는 항구에서는 배를 타고 겨울궁전으로도 갈수 있다. 황제의 뱃길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음악과 문학의 중심지다. 대가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은 1862년 문을 연 러시아 첫 음악학교다. 차이코프스키가 1865년 그 학교 1회 졸업생이다. 차이코프스키는 졸업후 모스크바로 건너가 활동했고 1866년 그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모스크바 음악원을 열었다.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이름으로 별칭을 붙여 놓았다.
1907년 졸업한 짐발리스트는 미국으로 건너가 돈 많은 여자 커티스를 만나 결혼하면서 미국에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교육방식을 심은 커티스 음악대학을 열었다.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정원은 1500명. 이 가운데 한국학생이 120명이다.
음악원의 좌우에는 글린코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동상이 각각 서있다.
글린코는 러시아 근대음악의 아버지로 1804년 태어나 1857년 죽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그의 뒤를 이어 러시아 음악 발전을 이끈 사람. 1908년 죽었다.
음악원 건너편에는 세계 최고의 발레단으로 유명한 키로프극장이 있다. 키로프극장에서는 유수의 음악작품이 초연된 것으로 더 유명하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가 모스크바에서 초연됐지만 실패의 쓴맛을 보고 10년후 이곳에서 다시 올려 대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베토벤의 장엄미사곡도 1824년 이곳에서 초연됐다. 19세기 중반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유럽에서 음악의 중심 도시로 이미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대학도 음악원 못지 않게 유명하다.
이곳 출신 화학자와 과학자 가운데 유명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주기율표를 만든 멘델레프나 조건반사 이론의 파블로프 등이 대표적이다.
이 대학 동방학부 한국학과에는 30여명의 러시아인들이 한국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러시아의 저력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예술인 광장 거리에는 명소들이 모여있다.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홀을 비롯해 무소르그스키 발레 오페라 극장, 뮤지칼 코메디 극장이 함께 있다.
옆에는 러시아 박물관이 있으며 건너편에는 이 도시에서 가장 고급이며 오래된 그랜드 유럽 호텔이 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이곳에서 묵었다.
예술인 광장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1765년 지어진 가스트 니드보르 백화점이 나온다. 회랑식으로 이뤄진 2층 복도의 길이가 1킬로미터에 달할 정도로 큰 규모다.
러시아 황제들은 유럽 경매시장에서 미술품을 적극적으로 사들였다고 한다. 남의 나라에 침략해 고품을 훔쳐다 전시하고 있는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다르다. 심지어 네바강가에 전시돼 있는 스핑크스상도 1832년 이집트에서 경매로 나오자 사들여 갖다 놓았다.
여제인 에까테리나 2세는 한꺼번에 240여점의 미술품을 사들이기도 했다고 한다.
황제의 겨울궁전(러시아말로 짐느 뜨바레츠)이었던 에르미따쥐 궁은 이제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미술관으로 변해있다. 프랑스 르부르, 영국 브리티시 뮤지엄과 함께다. 황제들이 사모은 유럽의 미술품들이 여기에 전시돼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에르미따쥐는 은둔의 의미. 휴식을 위한 공간이었던 5개의 궁전 가운데 하나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궁전 앞 넓은 광장 한 가운데에는 직경 4미터에 600톤짜리의 통 돌이 높이 48미터의 통 돌이 솟아 있다. 알렉산더의 원기둥이다. 궁전 정문과 마주보는 건물은 해군참모본부다.참모본부 건물은 나폴레옹 전쟁 승전 기념 아치가 세워져 있다.
에르미따쥐 박물관은 연결돼 있는 5개의 건물로 구성된다. 유네스코에 의해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1754~ 1762년에 만들어졌다. 가운데 기둥 하나 없이 가로 50미터 세로 100미터에 높이 30미터 가량의 큰 연회장을 배치할 정도로 뛰어난 건축술을 당시 갖고 있었다.
1057개의 방 가운데 400개만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전시 공간의 동선을 연결하면 27킬로미터에 달한다. 300만점의 소장품을 하나에 1분씩만 봐도 5년 이상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소에르미따쥐 건물의 명물은 황금공작새 시계다. 영국사람 제임스 쿡스가 제작했다는 이 시계는 18세기 중반의 작품이다. 아직도 매주 수요일 5시 공작새가 날개를 펴고 운다. 물론 시계는 지금도 작동한다.
러시아에 있는 모자이크 작품은 모두 돌을 박아 만들었다. 로마식 모자이크는 네모난 작은 돌을 박았고, 플로렌스식 모자이크는 그림에 따라 돌을 잘라 박는 방식이다.
구에르미따쥐 건물에는 램브란트를 비롯한 15세기이후 유명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돼있다. 램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는 에르미따쥐 박물관의 상징이다.
전시돼 있는 `다나에`라는 작품에는 지난 1985년 어느 정신병자가 칼로 긋고 황산을 붓는 사고를 저지른 흔적이 남아있다. 희대의 사고다.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드 다빈치 작품 2점도 있다. 모두 성모상이다. 아기를 안고 있는 마리아와 그 옆의 요셉이다. 청순하고 젊은 마리아의 모습과 달리 지나치게 늙고 병약해보이는 요셉이 극명하게 대조된다. 베노사의 성모상은 1914년 미술상에게서 사들였다고 한다. 다른 작품인 `리타의 성모상`도 1865년 역시 미술상에게서 매입했다.
라파엘로의 작품도 2개가 있다. 성모상과 성가족상이다. 한 통로의 천장에 라파엘로의 천지창조를 모사한 그림이 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인 `발 주무르는 청년 `이라는 작품도 있다.
루벤스의 2대 명작인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라는 작품도 이곳에 있다. 에르미따쥐 박물관은 루벤스의 작품을 그의 고향 프랑드르외에는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중심 대로에는 인접해 있는 두개의 성당이 있다.
우선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을 모델로 만든 카잔스키 성당이다. 1801년부터 1811년에 만들었다. 94개의 코린트 양식 기둥이 앞을 두르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 때 무신론을 전파하기 위한 박물관으로 이 성당을 활용했다니 아이러니의 극치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어 낸 주역 코드조프 장군의 무덤이 있다.
또 하나는 구원의 성당이다. 러시아말로 스파스나 크로비. 1881년 알렉산더2세 황제가 암살당했던 길에 비잔틴 양식으로 성당을 세웠다. 겉 모습이 화려하고 돔 지붕을 다른 성당처럼 금박으로 덮지 않고 다채로운 채색으로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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