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필동정담] 깃대종(2018.12.25.)

joon mania 2018. 12. 26. 16:16

[필동정담] 깃대종(2018.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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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이나 자연환경지에 가면 반드시 보전해야 하는 동식물을 하나씩 정해 놓고 있다. 깃대종(flagship species)이라고 부른다. 해당 지역 환경보전 정도를 살필 수 있는 지표가 되는 동식물종이다. 유엔환경계획이 1993년 발표한 생물다양성 국가연구에 관한 가이드라인에서 제시된 개념이다.
깃대라는 단어를 쓴 건 해당 지역 생태계를 회복하는 데 개척자 같은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시베리아호랑이나 판다, 코알라같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동물을 깃대종으로 쓰기도 하지만 특정 지역에만 있는 동식물을 택하기도 한다. 홍천 열목어, 거제도 고란초, 태화강 각시붕어, 정선 동강할미꽃 등이 대표적이다. 국립공원들은 식물과 동물을 나란히 깃대종으로 정해 놓았다. 북한산은 산개나리와 오색딱따구리를 택했다. 설악산은 눈잣나무와 산양이다. 지리산은 히어리와 반달가슴곰이다. 제각각 토양과 환경에 적합하고 잘 자라는 종을 내세운 건 당연하다. 한려해상공원은 거머리말과 팔색조를, 태안 해안은 매화마름과 표범장지뱀을 내세운 것을 보면 산악 지역과 바다 지역의 차이를 금세 확인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생태계의 보고인 한라산의 깃대종은 따로 없다.

깃대종을 보전하는 노력은 다른 생물 보호 효과를 동시에 거둔다. 외래 동식물 확산으로 토종이 사라지는 안타까운 현상을 막기 위해 관련 단체들이 보호 캠페인을 펴는 것도 넓게 보면 깃대종 살리기의 연장이다. 깃대종은 한 지역 생태계를 상징하지만, 이것이 없어진다고 생태계가 파괴되지는 않는다. 한 종의 멸종이 다른 모든 종의 다양성 유지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핵심 종(keystone species)은 따로 있다. 불곰, 코끼리, 수달 같은 동물이다.

인간 사회에서도 국가마다 조직마다 각각 핵심 종과 깃대종을 갖고 있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수 불가결한 핵심 종과 깃대종은 무엇일까. 적폐 청산, 탈원전, 최저임금, 비정규직 등 이념과 정책에 담겨 있나. 4차 산업혁명, 공유경제, 규제 완화 등 실용에서 찾아야 하나. 아니면 사람과 공동체 그리고 사랑과 배려 같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나. 오늘 성탄절이고 일주일여 뒤면 2018년을 마감하지만 내겐 아직 풀리지 않은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