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공시가격의 정치경제학(2019.1.31.)
주택 공시가격을 수치로만 보면
단순한 경제 문제에 그친다
하지만 산정과정에 반발 커지고
세금폭탄에 엮여 선거판 흔들면
정치적 이슈로 훌쩍 변한다
지난주 발표된 22만채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을 숫자로만 보면 뭐가 문제인지 잘 와닿지 않는다.전국적으로는 평균 9.1% 올랐고,서울은 17.7%다.14년만에 최대의 오름폭이라고 한다.
그래봐야 시세 대비 비율을 말하는 현실화율은 아직 53%에 그친다.한해 전엔 51.8%였는데 겨우 1.2%포인트 끌어올렸다.아파트의 경우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지난해 기준 68%까지 올라있다.그래도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은 4월말 내놓을 아파트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에도 시세를 적극 반영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런식으로 단순하게 수치로만 접근한다면 여기까지는 공시가격의 경제학이다.하지만 산정과정에서의 반발과 조정 그리고 그에 근거한 재산세 부과로 범위를 넓히면 공시가격의 정치경제학이 기다리고 있다.시세와 동떨어진 낮은 공시가격은 부동산 거래의 지표 기능을 약화시키고 조세 및 복지 비용 부담에 형평성을 훼손한다.국책 사업이나 토지 수용 등에 보상금의 격차를 불러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 산정에 시민들의 불만은 예년과 달랐다.지난 25일 발표 전 의견청취 기간 중 접수된 문제제기 건수는 전년에 비해 80%나 늘어 이런 기류를 반영했다.당사자가 반발하면 당초 매긴 공시가격을 고무줄처럼 줄여줘 주먹구구라는 비판에 휩싸였다.서울 연남동 한 주택의 경우 10억원씩 깍이는 널뛰기를 했다.
부동산가격 공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시지가는 감정평가사 등 전문가를 활용해 조사·산정토록 돼있다.그런데 인력과 비용의 한계로 주택 공시가격 조사·산정에는 감정평가사외에 감정원 일반 직원도 참여한다.감정평가에는 주변의 거래 사례를 비교하고 여기에 표준건축비나 부대비용 등을 감안해 자산 가격을 정하는데 조사산정은 거래 사례 비교에만 의존한다.공시가격 산정은 내야 할 재산세에 직결되는 만큼 자격을 가진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고 원칙과 기준도 명확해야한다.그만큼 비용과 시간도 들여야한다.현실화율을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만 갖고 달려들어 뚝딱 해치울 간단한 일이 아니다.지역별로 주택유형별로 상세한 데이터를 확보한 뒤 마련해야 할 길고도 어려운 과제다.한해 작업만으로 상전벽해처럼 달라진 가격을 들이밀면 당사자들이 왜 반발하지 않겠나.
이번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 발표를 전후해 벌써 시중에는 부동산 세금폭탄이라는 표현이 난무하고 있다.400만여채 개별단독주택과 아파트 등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나올 4월 무렵에는 한술 더 뜰것이다.정부는 고가 주택엔 공시가격을 급격하게라도 끌어올려 세금을 더 매기겠다는 심산이다.초고가 보유자 상위 1~2%에게는 세금폭탄 소리를 들어도 밀어부치려한다.그래봐야 1주택자의 보유세는 공시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종부세를 합쳐 전년 세액의 150%를 넘지 못하도록 법적 상한선을 두고 있다.그래도 불만은 크다.
문제는 집 한채 갖고 있는 중산층이나 서민층 조차도 작년보다 더 늘어날 세금을 걱정하고 있다는 점이다.국토부가 전체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중저가 주택의 공시가격 급등은 없다고 아무리 설명해봐야 안먹힌다.올 7월과 9월 부과될 재산세와 12월 나올 종합부동산세 고지서를 받아쥔뒤 민심의 이반이 엄청날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야당은 세금폭탄이라는 프레임으로 공세를 퍼부을게다.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벌써 "공시가격이 오르면 1주택, 은퇴가구, 호가만 오른 서민들에게 세금이 무차별적으로 적용된다"고 주장했다.세금폭탄 프레임은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의 심리를 흔들고도 남을 자극적인 사안이다.
공시가격은 이렇게 경제학에 그치지 않고 정치경제학으로 진화중이다.공시가격 인상이 세금폭탄 프레임을 부르고 이는 선거판을 흔들수 있기 때문이다.조세저항은 군주시대 제왕까지 몰아내는 위력을 보였다.표로 권리를 행사하는 대의제 민주주의시대에도 조세저항의 위력은 여전하다.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공시가격의 정치경제학에 한층 정교하게 대비해야한다.욕심만 갖고 덤비다 선거에서 낭패를 당한뒤 후회해봐야 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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