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필동정담]미관말직 능참봉(2020.4.3.)

joon mania 2020. 4. 2. 10:45

[필동정담]미관말직 능참봉(2020.4.3.)



조선왕조의 왕이나 왕비를 모신 능에 가면 초입에 재실(齋室)이라는 집부터 마주친다. 제관들이 도착해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제례를 준비하는 곳인데 평소에는 능을 돌보는 능참봉이 상주하던 건물이다.서울에서도 짬을 내면 강남에 선릉과 정릉, 강북에 태릉과 강릉 등 도심 안에서 쉽게 확인해볼 수 있다.


조선왕릉은 120기 가량 조성됐는데 왕과 왕비를 모신 능이 42기, 왕세자와 왕세자빈 또는 왕의 사친(私親)을 모신 원이 14기다. 그 외의 왕족을 묻은 묘는 64기로 일반인의 무덤처럼 대했다. 42기의 능 가운데 개성에 있는 제릉과 후릉을 제외한 40기가 서울과 경기 인근 지역에 보존돼있다. 500년을 넘긴 한 왕조의 왕릉이 이처럼 온전하게 지켜진 유례를 찾기 어려워 유네스코는 2009년 6월 세계 유산으로 조선왕릉을 등재했다.

 

능참봉은 조선시대 벼슬아치 18계 품관 중 가장 낮은 종9품이었다. 조정에서는 쳐주지도 않는 미관말직이지만 벼슬은 벼슬이었다. 동네 양반인 진사나 생원과는 격이 달랐다. 죽은 뒤 신위에 벼슬 못얻고 죽은 사람인 학생부군(學生府君)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능참봉 이라는 벼슬을 명기했으니 큰 차이다.보잘것 없어 보이지만 능참봉도 상당한 끗발과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돌아가신 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 왕릉에 절을 하나씩 붙인 뒤 물자를 조달할 토지를 딸려주곤 했는데 거기서 소출되는 곡식의 추수관 임명권이 능참봉에게 있었다.소작인은 추수관을 접대하고 추수관은 능참봉에게 아부하는 먹이사슬의 정점을 차지했다.


옛 속담에 `나이 칠십에 능참봉`이라는 말이 있다. 권력자에게 줄을 대 늘그막에 눈 먼 자리 하나 꿰차는 행태를 빗댔다. 4.15 총선을 마치고 나면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능참봉 같은 벼슬을 나눠먹을지 궁금하다. 정당 내부 경선이나 공천 과정에서 짬짜미 거래를 하고 그 댓가로 능참봉 하나씩 받는 꼴불견이 횡행할텐데 걱정이다.윤경호 MBN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