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운레히트슈타트 안되려면(2021.1.16.)
히틀러와 나치의 지배를
그전엔 없던 용어 만들어
불의(不義)국가로 규정했다
대통령의 사면권 잘못쓰면
법치국가에서 멀어진다
사전에도 없는 운레히트슈타트(Unrechtsstaat)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독일 헌법학자들에 의해서다.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한 뒤 일이다.법치국가라는 의미인 레히트슈타트(Rechtsstaat)에 부정의 접두어(un)를 붙였다.뜻을 풀어보자면 불의(不義)국가 정도로 보면된다.
히틀러와 나치 시절도 겉으로는 법에 의한 지배였다.`법에 의한 지배‘는 17세기초 영국에서 국왕 제임스1세와 싸웠던 의회세력이 내민 개념이다.군주의 권력을 견제하고 자의적 통치를 막으려는 의도다.왕의 말과 결정이 우선하는 절대왕정을 제어하자는 취지다.의회에서 만든 법이 왕의 말과 결정을 견제토록 했다.법에 의한 지배는 그렇게 자리를 잡아갔다.하지만 이후 곳곳에서 악용됐다.나치 시절에도 법은 존재했다.히틀러의 탄생도 법적 절차를 거쳤다.`악법도 법'이라는 소크라테스식 철학을 갖다 붙여 따라야 한다는 이들도 있었다.아무리 그래도 헌법학자들은 나치의 지배를 기존 개념 중엔 자리매김하기 어려웠나 보다.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한 폭압적인 국가체제였으나 그렇다고 역사에서 지울 수는 없었다.새로운 용어를 만들었다.역사에서 잊지 않도록 낙인을 찍었다.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라도 법에 의한 지배를 왜곡한다.퇴임을 앞둔 임기 말 대통령들이 저지르는 행위에서 이런 경향을 목도한다.대표적으로 특별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면권 행사다.사면권은 절대군주 시대의 유물이다.군주의 자비로 베푸는 은사 즉 은전권이었다.계승할 만한 가치가 없다.헌법에 명기된 대통령의 권한이니 존중해야한다는 논리에 나는 동조할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퇴임 한 달을 앞두고 지난해 말 무더기 사면을 단행했다.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대표적인 대상은 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아버지 찰스 쿠슈너다.그는 탈세와 불법 대선자금 모금 등 18개 혐의에 징역형을 선고 받은 상태였다.2016년 대선때 선거 개입 논란인 러시아 스캔들에 연루된 로저 스톤 등 과거 참모도 끼어넣었다.3명의 공화당 부패 하원의원까지 포함시켰다.시위대의 의사당 난입 후폭풍으로 하원의 탄핵 공세를 맞지 않았으면 막판에 사면권을 더 휘둘렀을지 모른다.
지난 2013년 1월 퇴임을 코앞에 둔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친구 최시중, 천신일 씨와 사돈 집안의 기업 오너 조현준 씨를 특별사면했다.나중에 공개된 사면심사위원회 논의록을 보면 외부위원들의 반대가 얼마가 강했는지 읽을 수 있다.당시 권재진 장관과 법무부쪽 위원들은 `대통령의 심정` 운운하며 밀어부쳤다.외부 위원들은 반대했지만 소용 없었다.전임 대통령 중 임기 말 정치인이나 경제인에 사면을 단행한 전례가 없지 않았다.하지만 대통령과 개인적인 연관자를 노골적으로 포함시킨 것은 초유의 일이었다.사면법에는 법무부장관이 대상을 정하도록 돼있다.국무회의 의결도 거쳐야한다.소정의 절차를 밟도록 하지만 대통령의 뜻에 사실상 좌우됐다.신세진 사람에게 빚을 갚거나 아는 사람 챙겨주는 수단이 사면권이었던 꼴이다.
새해 벽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서 나온 두 전직 대통령 사면 건의 표명은 논란을 키웠다.박근혜 전 대통령 재상고심도 끝났으니 사면 논의는 다시 불거질게다.명백한 실정법 위반으로 벌을 받았음에도 정치적 목적으로 사면하려는건 정치가 사법체계를 깔아뭉게는 행위다.트럼프나 이명박 처럼 개인적 친분을 내세운 사면은 권력의 사유화다.국민 통합이라는 명분은 공허하다.전직 대통령들이니 사면해야 한다는 주장도 부질없다.벌을 감하려거든 가석방이나 형집행정지를 활용하면 된다.대통령의 사면권은 절대 함부로 써서는 안된다.자의적으로 휘두르는 사면권은 법에 의한 지배를 팽개치고 불의국가로 가는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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