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맞이하는(?) 죽음 (2021.2.20.)
제자에 대신 빚 갚으라는
소크라테스의 유언처럼
연명치료 거부 의향서도
죽음에 대한 인식 바꾸고
현재 삶 소중함 일깨운다
3년만에 80만명을 넘겼다고 한다.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들 얘기다.응급실에 실려 갔거나 오랜 투병에도 회복될 가능성이 높지 않으면 어느 단계부터 연명 치료를 하지말라고 써놓는 문서다.심폐소생술이나 산소호흡기 장착 등이다.무의미하게 목숨을 연장하는 의료 도움은 받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다.연명의료결정법을 2018년 2월부터 시행한 뒤 쌓인 실적이다.성인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지만 그래도 60세 이상이 90%를 차지한다.자연스러운 일이다.여성이 남성보다 죽음에 더 의연한 듯 하다.사전의향서 작성자 가운데 여성이 남성의 2배를 웃도는 수치에서 간접적으로 추정된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존엄사법으로도 불린다.존엄사란 품위 있는 죽음을 말한다.죽음 자체를 두려워하고 금기시했던 그동안의 세태를 돌아보면 큰 변화다.피동적으로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스스로 준비해서 맞이하며(?) 삶을 정리하겠다는 것이다.상급학교 진학이나 배우자 선택, 2세 출산 같이 인생의 고비마다 겪는 일은 미리 준비해서 치른다.죽음도 마찬가지로 대응하자는 것이다.가족과의 이별이나 주변 정리에 준비된 마무리를 하기 위해서다.
의연하게 맞이하는 죽음에 관해서는 소크라테스가 압권이다.소크라테스는 사형 집행 전 "아이클레피오스에게 닭 한마리를 빚졌으니 기억해뒀다가 대신 갚아주라"는 유언을 남겼다.제자 크리톤에게 한 말이다.후세 학자들은 다양한 해석을 했다.의술의 신 아이클레피오스를 끌어들여 자기는 사람들 마음의 병을 고치려다 독배를 마시고 가니 나중에 이 병을 고쳐 사람들이 착해지는 날 감사의 뜻으로 닭 한마리를 바치라는 철학적 의미로 보는게 첫째다.아스클레피오스라는 실제 인물에게 빚을 졌으니 대신 갚아달라는 현실적 해석은 둘째다.단순한 농담이었다는 실없는 해석도 있다.법정에서의 변론과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있는 동안 제자들과 나눈 대화를 플라톤이 정리한 `변명'에 담겨있는 대목이다.여하튼 죽기 전 남긴 유명한 유언을 꼽으면 빚진 닭 한 마리를 대신 갚아달라는 소크라테스가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에 대해 이렇게 정리했다.사람은 몸과 영혼으로 이뤄져있다.그런데 몸에 영혼이 엮여있는 이는 물욕이나 성욕 등 탐욕스러운 본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지혜를 사랑한다면 정신 수양으로 몸의 영역에 억눌린 영혼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도록 만들어야한다.정신 수양을 거친 사람과 거치지 않은 사람은 죽음에 대한 태도도 다르다.몸에 영혼이 메여있으면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피하려고만 한다.일상 속에 정신 수양을 꾸준히 하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고 소크라테스는 가르쳤다.
아직 멀쩡하고 죽음을 떠올리기도 싫은데 연명치료 거부 의향서에 관심을 가져보라면 뜬금없다고 할게 뻔하다.하지만 치명적인 병이나 사고는 갑자기 찾아온다.무엇보다 나이나 건강상태에 상관없이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꿔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궁금한 분들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을 일단 검색해보시길.본인 작성이 원칙이니 가까운 등록기관을 방문해 전문가와 상담부터 해보는게 좋다.의향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돼 자동으로 관리된다.일부러 알리지 않아도 필요한 상황엔 의료기관이 해당 여부를 바로 확인한다.
`웰다잉‘이라는 개념에 이젠 많은 이들이 익숙해졌다.고통을 덜 받으며 죽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어둠이나 두려움을 떠올리게 하는 죽음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나고 생각을 바뀌게 하는게 더 중요하다.오해하지 마시라.사전의향서 작성은 가족이나 친구 등 남는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다.나를 위해서다.등 떠밀려 당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맞이하는 준비를 통해 현재의 내 인생을 더 소중하게 보내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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