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취임100일에 만난 `돼지 복병`(2009.4.29)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시큰둥하게 말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100일이 99일째와 뭐가 다르냐고 되레 물었다.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는 듯이.
오바마 측근 중 측근인 데이비드 액설로드 백악관 선임 고문은 `밸런타인 데이로 착각하느냐`고 농담까지 하며 애써 의미를 깎아내렸다.
지난 1월 20일 취임한 미국 새 대통령이 100일을 맞는 29일을 앞두고 언론들이 요란을 떨자 백악관 참모들은 이렇게 대응했다.
사실은 치밀한 전략과 그림을 그려 놓고 국민에게 좋은 점수를 얻어내려고 주도면밀한 작업을 진행했다.
미국에서 대통령 취임 100일을 주목한 것은 프랭클린 루스벨트부터였다. 전임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대공황이라는 초유의 위기에 허둥지둥대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4년을 보낸 뒤였다. 1933년 초 취임한 루스벨트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청사진을 내놓으며 국민을 끌고 갔다.
그의 정책은 나중에 대공황을 극복한 `뉴 딜 정책`으로 치장됐다.
우리 역사에서도 대통령 취임 후 100일 대작전을 경험했다. 1993년 문민정부 기치를 내걸고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신경제 100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경제정책을 군사작전 하듯 밀어붙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29일 저녁 백악관에서 회견을 열고 국민에게 취임 100일을 맞은 소감과 향후 계획을 밝힌다. 취임 100일을 보낸 새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의외로 높다. 일간지 유에스에이 투데이와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실시한 조사에서는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해 56%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와 ABC뉴스 조사에서도 69%가 오바마 대통령 직무수행에 대해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취임 100일 지지율은 2001년 56%였던 조지 부시와 1993년 55%였던 빌 클린턴을 앞지른다.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는 "위기를 돌파하는 리더십은 신뢰 회복에서 나온다"며 "루스벨트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되찾아 왔다면 오바마는 미국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끄는 데 성공하고 있고 국민이 호응하고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100일 이벤트는 순풍에 돛을 단 듯했지만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났다. 멕시코발 돼지 인플루엔자가 미국 전역으로 퍼지면서다. 백악관은 휴일이었던 지난 26일 긴급 브리핑을 실시했다. 보건당국은 전국에 비상 사태를 선포했다. 언론의 관심은 오바마 100일 평가에서 돼지 인플루엔자 방역 대책으로 옮겨버렸다. 돼지 인플루엔자 사태는 오바마 취임 100일에 쏟아질 수 있었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에 영낙없이 찬물을 끼얹은 꼴이다.
이런 돌발 사태가 생겼다고 미국 국민이 취임 100일을 맞은 오바마 대통령을 달리 보는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초유의 경제위기를 탈출시켜줄 리더십이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펼쳐 온 위기 극복 대책은 일단 미국민에게 수용되고 있는 분위기다. 워싱턴포스트와 ABC 조사에서 오바마의 대통령직 수행에 대해 무당파 가운데 67%가 지지를 보냈다. 공화당원 응답자 중에도 36%가 지지 의사를 표했다. 오바마에게 표를 찍지 않았던 국민도 그를 따르고 있다는 의미다.
대통령 리더십을 인정하면서 묵묵히 따라주고 결과를 기다려주는 국민이 있는 한 1년 후, 4년 후를 보며 장거리 경주를 펼칠 수 있다.
대통령으로 뽑아놓고 100일 만에 성과를 요구하며 조급증을 보이는 국민에게는 자신 있게 정책을 펼치기 힘들다.
새 대통령 취임 100일에 대한 평가는 바꿔보자면 국민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잣대일 수 있다.
집권 2년차를 맞은 이명박 대통령 정책 구상을 우리 국민은 얼마나 지지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을까. 대통령 취임 100일 만이 아니라 200일, 1년 등 분기점마다 내려지는 평가는 국민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임을 잊지 말자.
[워싱턴 = 윤경호 특파원 yoon218@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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