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대하여

이민자의 딸, 美 법 최후 수호자에 오르다

joon mania 2015. 8. 6. 16:31
이민자의 딸, 美 법 최후 수호자에 오르다
히스패닉계로 첫 대법관에 지명된 소토마요르
친척 도움받아 대학 진학…진보성향 판결 많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후보 지명자가 26일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미소 짓고 있다. 【연합뉴스】
`새로운 역사를 쓰는 일이다.` 

AP통신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6일 신임 대법관 후보로 히스패닉계 여성인 소니아 소토마요르 판사(54)를 지명하자 이렇게 표현했다. 

소토마요르 판사가 상원의 인준을 받으면 히스패닉계로는 미국 최초로 대법관직에 오른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여성으로는 세 번째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녀의 지명을 발표하면서 "히스패닉계 대법관의 탄생은 법 앞에 평등한 정의라는 목표를 향해 또 다른 한 발짝을 내딛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후임 대법관 자리에 여성 또는 히스패닉 인사가 후보로 지명될 것이라는 관측은 정설로 굳어져 왔다. 소토마요르 카드는 두 요소를 모두 아우를 수 있다. 

소토마요르는 푸에르토리코 이민자의 후손으로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으로 건너온 아버지는 영어 한마디 못하는 소수인종이었다. 박봉에 허덕이는 공장 노동자 신세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나마 소토마요르가 9세 때 세상을 떠났다. 

간호사였던 어머니가 가장 역할을 했다. 뉴욕 브롱크스의 저소득층 주택가에서 소토마요르와 남동생을 키워냈다. 훌륭한 교육이 아이들의 성공을 이끌어낸다는 점을 믿은 어머니는 아이들 교육에 모든 것을 걸었다. 아이들을 가톨릭계 사립학교에 보냈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백과사전 전집을 자녀들에게 사줬다. 어머니의 열성 덕분에 소토마요르는 판사로, 남동생은 의사로 성공했다. 

8세 때 소아당뇨 진단을 받아 고생했던 소토마요르는 움츠리지 않고 공부에 열중했다. 친지와 교사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아 프린스턴대학에 진학해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예일대 로스쿨에 진학했고 학회지 편집장도 맡았다. 

소토마요르는 프린스턴대학 재학 중이던 1976년 결혼했으나 1983년 이혼했다. 로스쿨 졸업 후 뉴욕지방검찰청과 로펌에 몸담다 조지 H 부시 대통령에 의해 1991년 지방법원 판사로 지명됐다.1997년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상급 법원인 항소법원 판사로 지명됐다. 중도 혹은 진보적 성향으로 분류된다. 

제2순회 항소법원 판사로 재임 중 소토마요르는 1994~1995년 프로야구(MLB) 선수 노조의 파업으로 야구경기가 중단됐을 때 파업을 종식시키는 강제명령을 내린 것으로 유명하다. 소토마요르는 이 판결로 `야구를 살려낸 판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난해 코네티컷의 뉴헤이븐 시당국이 소방대원 승진시험에서 소수인종 가운데 승진 요건에 해당하는 점수를 딴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시험 결과를 무효화한 조치에 대해 손을 들어주면서 보수진영으로부터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공화당 측은 소토마요르의 상원 인준 과정에서 그의 진보적 성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방법원 판사로 첫 임명될 때 상원에서는 무난히 인준을 받았지만 1997년 항소법원 판사로 지명됐을 때는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로 1년 넘게 인준 절차가 지연됐다. 

민주당의 패트릭 레이히 의원은 히스패닉계 여성이라는 이유로 1년 넘게 인준절차를 미룬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면서 비판했다. 당시 공화당 의원 중 일부는 소토마요르가 히스패닉계로 나중에 대법관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그의 항소법원 판사 인준을 미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공화당 의원들이 인준에 찬성할지 주목된다. 

[워싱턴 = 윤경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