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초 청와대 취재 비망록 4
<병술년 신년연설과 세금 인상 논쟁>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005년 10월 30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북악산 산행 뒤 간담회에서 한가지 고민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10년후 20년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될것인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는지, 미래 폭탄을 어떻게 미리 대비해야 하는지 이른바 미래 구상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2006년 연초에 하는 연두회견과 2월25일 취임3주년 사이에 그동안 생각해온 미래 구상을 국민들에게 밝히고 대국민보고서 형식으로 책으로 만들어 발간하겠다고 밝혔다.
기자들은 미래 구상에 어떤 내용이 담길 것인가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미래 구상 작업은 아예 윤태영 연설기획비서관에게 전담시켰다. 그는 오랫동안 맡아온 부속실장 업무를 연세대 후배인 문용욱씨에게 넘기고 대통령의 생각과 표현을 조율하는 업무만 하고 있었다. 그러니 미래 구상 작업은 자연스럽게 그의 몫이 됐다. 윤 비서관 밑에는 대변인실에서 일하던 유민영 행정관이 배치됐다. 성균관대 운동권 출신인 유 행정관은 차분한 성격에 기획력도 뛰어나 적임자였다.
그러던 가운데 청와대는 신년 연두회견을 과거와 달리 새로운 방식으로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신년연설 형식으로 하고 이와 별도로 날을 잡아 기자들과 질문 답변하는 형식의 연두회견을 분리하겠다는 것이었다.
한해의 국정운영 방향을 설명하는 연두회견에서 대통령이 던지고 싶어하는 메시지는 뒷전으로 밀리고 당장의 현안이 신문과 방송의 주요기사로 다뤄져왔던 전례를 감안해 묘책을 낸듯했다. 2005년의 경우 양극화 해소와 동반성장이라는 화두를 던졌지만 신문들의 관심은 당시 이기준 교육부총리 인사 파동의 책임에 대해 더 골몰했던 게 사실이었다.
문제는 신년연설에 어떤 내용이 담길것인가였다. 청와대측은 점차 대통령이 당장의 현안보다는 중장기 과제에 대해 언급하는 분량이 더 많을 것임을 암시했다. 그렇다면 올해 2월경 내놓겠다는 미래구상을 앞당겨 발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관측이 이어졌다. 하지만 참모들은 미래구상 작업은 계속 진행해 나중에 따로 내놓고 신년연설에서는 우리 사회의 중장기 과제에 대한 대통령의 고민을 국민들에게 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날짜는 몇차례의 변경끝에 1월 18일로 잡혔다. 그리고 1월25일 연두회견은 별도로 하기로했다.
신년연설을 앞두고 여러 신문들은 어떤 내용이 주를 이룰지 예측기사를 쏟아냈다. 국민연금, 조세개혁, 재정개혁, 저출산고령화대책, 비정규직 대책, 자영업자대책 등 그동안 나왔던 현안에 대해 두루 다뤄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일요일인 1월 15일 윤태영 연설기획비서관은 춘추관에서 일부 기자들에게 신년연설에 획기적인 내용이 담기지 않는다고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했다.기자들은 매번 들어온 내용이고 국민들에게는 꼭 말해야 하는 내용들로 채운다고 했다. 물론 사안을 모두 담기 어렵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할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다음날 아침인 16일자 한겨레 신문은 1면톱으로 노대통령의 신년연설이 조세개혁 핵심이라고 보도했다.나아가 현재 20%에 미치지 않는 우리 국민들의 조세부담률을 경제 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기구(oecd) 국가들 수준인 30%까지 높이는 방안을 국민들에게 제시할 것이라는 내용을 전했다. 세금을 왕창 올린다는 얘기였다.
세금을 올린다는 방안은 파장이 컸다. 세금을 올린다는데 환영할 국민이 누가 있겠는가. 더구나 한나라당은 감세 주장까지 내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부가 주도해 미래 과제를 대비하려면 막대한 재원이 드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재원조달 방안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나올 수밖에 없다. 국채를 발행해 돈을 조달하는 방안. 아니면 조세 부담을 더 늘리는 방안. 과거처럼 외국에서 돈을 꾸어 오는 방안 등이다.
한겨레의 보도에 대해 청와대는 물론 주무 부처인 재경부에서 당장 아니라고 부인하고 나섰다. 노대통령의 신년연설 작업의 실무를 맡고 있던 김영주 경제정책수석이 올해 부처의 연두 업무보고 방식 변화에 대한 브리핑을 하러 춘추관을 찾아왔다가 이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얘기했다. “올해 신년연설에 조세개혁에 대한 얘기는 한마디도 없다”고. 한겨레의 보도는 사실무근이라는 부인에도 불구하고 마치 대통령이 생각하고 있는 본심을 들킨 것처럼 두고두고 신년연설의 화두가 되는 듯 관련 보도가 줄을 이었다.
신년연설은 1월 18일 밤10시에 하기로 했다. 국민들의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 밤 9시 뉴스가 끝난 뒤로 택했다. 하필 그날 11시30분부터 한국 축구대표팀이 아랍에미레이트팀과 하는 평가전을 중계하기로 돼 있어 절묘한 시간을 골랐다고 말이 많았다. 지상파 3사와 케이블티비 3사 등 6개 방송이 생중계하기로 하자 언노련 등에서 시청자들의 선택권을 빼앗아갔다며 비난성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여하튼 생중계는 방송사들의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대통령이 무슨 얘기를 할지 모르는 판에 방송을 하지 않았다가 큰 얘기라도 나오면 낭패를 면키 어렵기 때문에 방송사들은 모두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왔다.
밤10시 연설의 자료는 오후 4시~5시 경 주겠다고 했다. 그 시간에 줘도 조간신문은 가판 제작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결국 대변인과의 협의로 요약본을 2시경 주기로 했다. 정작 2시에 요약본은 대변인의 구술로 대체했다.
요약본의 내용은 간단했다. 사회갈등과 분열의 원인은 양극화다.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은 일자리 창출이다. 안정적인 경기 관리, 서비스산업과 중소기업 육성, 사회적 서비스 일자리 확충 등의 방법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데 주력하겠다. 이런 과제를 위해서는 국민 모두가 이제 책임 있게 생각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자는 제안을 한다는 것이었다. 가판을 발행하는 일부 신문들은 이 내용으로 일단 가판을 제작했다. 제목은 ‘양극화 해소위해 일자리 창출에 주력‘ 정도였다. 너무 밋밋했다.
오후 5시40분 무렵 마침내 200지 원고지 80매 분량의 연설 최종본이 배포됐다. 내용은 알려진 대로 눈에 띄는 대목이 적었다. 지난 3년간 경제의 어려움 때문에 고생한 국민들에게 송구스럽다는 말로 대통령은 연설을 시작했다. 이어 양극화 원인과 현상을 진단한 뒤 여러 대책들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게 생각하고 행동하자는 제안을 국민들에게 했다.
연설 중간 대목에 재원조달에 관한 얘기가 잠시 언급됐다. 대통령은 2030년까지 장기재정계획을 세워 봐도 미래 과제를 위해서는 재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더라, 재정 구조를 아무리 효율화해도 한계가 있더라,그런데 감세주장까지 한다. 그러니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대통령은 밝혔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자는 이 한마디가 다음날 모든 신문의 제목으로 떠올랐다. 결국 대통령이 하고 싶은 제안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국민들의 의견을 모아 공론화하는 과정을 거쳐 달라는 것이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세금을 올리는 방안일수도 있고, 국채를 발행하는 방안일수도 있다. 세금을 올리려면 당연히 국회와 국민들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국채를 발행한다면 재정 구조를 적자 체제로 가자는 것으로 우리 세대의 빚을 다음 세대에 넘기는 것인데 이것 역시 국민들의 동의가 필요한 일이다.
세금을 더내는 방식은 유럽형이다. 30% 이상의 조세부담률 대신 정부에서 복지를 책임지는 유럽나라들의 방식이다. 반면 국채 발행은 미국이나 일본식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일본의 재정 적자는 심각한 규모여서 다음 세대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넘겨져있다.
신문과 방송은 모두 미래 과제 해결을 위해 세금 인상이 필요한지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인지를 놓고 갖가지 보도를 이어갔다.
노대통령으로서는 신년연설을 통해 딱 부러지는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국민들에게 미래 과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재원 마련 방안의 논쟁을 던지는데 성공한셈이다.
신년연설은 청와대 집무실이나 방송사 스튜디오가 아니라 용산에 있는 백범기념관에서 이뤄졌다. 민족의 미래를 위해 고민했던 독립운동가 백범의 이미지가 주는 상징성을 고려했다고 했다. 용산에 새로 지어진 국립중앙박물관 메인홀에서 하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백범기념관으로 확정했다. 방청석에는 주부,학생, 공무원 등 230여명이 자리했다. 연설하는 대통령의 좌우로 이번 연설 내용에 관계되는 재경부, 교육부, 행자부, 노동부 등 국무위원 8명과 청와대에서 이병완 비서실장, 김병준 정책실장 등 10명이 나란히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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