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거리 표시 나무(2017.6.14.)
우리 조상들은 눈에 잘 띄는 나무를 심어 전봇대처럼 거리 표시 용도로 썼다. 자연 친화적이고 재치도 넘친다. 오리나무는 5리마다 심었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실제로 `나그네도 파발마도 거리를 가늠하는 십리절반오리나무`라는 저잣거리 얘기가 있다. 자작나뭇과로 아기 솔방울처럼 열매를 달고 있다. 껍질을 말려 물에 끓여서 먹기도 하는데 헛개만큼이나 숙취 해소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옛날엔 민간요법으로 분말을 외상 출혈에 바르기도 했다고 한다.
십리나무는 오리나무처럼 어디서나 인정받는 공통 나무가 따로 없다. 다만 일부 지방에서 하얀색 꽃을 피우는 쉬나무를 심어 십리나무로 간주했다.
남도지방에서 가장 대중화된 건 십오리를 표시하는 히어리나무다. 오리나무처럼 15리, 즉 6㎞마다 심어 거리를 표시하는 용도이니 시오리나무로 불렀는데 부르기 쉽게 히어리로 바뀌었다는 설이다. 노란 꽃이 도리깨를 달아놓은 듯 매달려 있는 모양새다. 꽃잎은 얇고 쭈글쭈글한 노란 종이를 여러 겹 접어 붙인 납판처럼 보인다. 처음 순천 송광사에서 발견된 데다 꽃잎이 납판 같다고 해서 송광납판화라는 다른 꽃이름도 가졌다. 지리산 지역에만 보였던 깃대종으로 우리나라에서만 서식하는 희귀종으로 알았는데 몇 해 전 일본에서도 자생하는 것으로 보고돼 지금은 특산식물에서 제외됐다.
지난 4월 초 섬진강 벚꽃 구경을 갔다가 터벅터벅 걸어 넘어간 어느 산자락에서 히어리나무를 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른 나무엔 꽃눈이 맺히기도 전에 히어리나무는 화사하게 꽃망울을 터뜨려 장관을 이룬다. 가지마다 감당하기 어려워 보일 정도의 꽃다발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어 거리 표시 나무로서보다는 풍성함의 상징으로 더 다가온다.
지리산 자락의 남쪽지방에만 있는 나무로 알려져 있었는데 경기도 광교산이나 강원도 백운산에서도 히어리나무 군락지가 발견됐다고 한다. 히어리나무의 자생 한계선도 북쪽으로 올라온 것을 보면 지구 온난화는 분명히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윤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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