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 15년 국제재판관 로스쿨行 막은 한국사회의 경직성(2016.10.4.)

joon mania 2018. 12. 11. 16:43

[사설] 15년 국제재판관 로스쿨行 막은 한국사회의 경직성(2016.10.4.)


      

유고전범국제재판소(ICTY)에서 15년간 재판관을 지낸 권오곤 김앤장 국제법연구소장이 자격 미달을 이유로 모 사립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로 임용되지 못했다는 소식에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권 소장은 국제재판관 임기를 마치고 지난 3월 귀국해 초빙·석좌교수 자격으로 이번 2학기부터 국제형사법 강의를 맡기로 돼 있었다고 한다. 그는 1979년 판사로 임관 후 대구고법 부장판사로 있다가 한국인 최초로 ICTY 재판관에 선출됐을 정도로 국제형사법 전문가다.
대학 측은 권 소장의 논문 점수가 대한변협 로스쿨 평가위원회에서 정한 기준에 미달해 강의 적합성을 갖지 못했다고 통보했다고 한다. 논문이나 저서, 학술대회 발표 등 실적을 모아 점수를 산정하는데 최근 5년간 총점이 80점으로 150점 이상이어야 하는 기준에 모자랐다는 것이다. 그가 쓴 국제재판 관련 논문들이 학회에서 발표되고 단행본으로도 발간됐지만 법학 관련 등재지에 실리지 못해 점수를 채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로스쿨은 5년마다 대한변협 산하 로스쿨 평가위원회로부터 운영 실태를 평가받는다. 대한변협 평가위는 로스쿨 인가를 담당하는 교육부 장관 직속 법학교육위원회의 논문 평가 기준을 거의 차용하고 있다.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이행 권고 등을 거치고 충족시키지 못하면 선발 정원이 줄거나 인가가 취소될 수도 있다. 각 로스쿨은 항목마다 점수를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으며 이런 차원에서 이번 권 소장에 대한 잣대도 엄격하게 댔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획일적인 기준을 고집하다가는 다양한 경험과 식견을 갖춘 이를 교수로 영입하기 어려워진다. 로스쿨은 다양한 분야를 거친 학생을 모아 법조인으로 양성하기 위한 제도인데 이런 식의 기계적인 교수 임용은 로스쿨 자체의 다양성을 훼손하는 결과로도 이어질 것이다. 권 변호사 같은 전문가는 규정 해석에 예외를 적용해서라도 영입해 그동안 쌓은 경험과 식견을 학생들에게 전수하도록 해도 모자랄 판인데 답답하다. 사회적으로 인정될 지식자본을 공유할 기회를 놓친다는 점에서도 안타깝다. 이번 일이 로스쿨 교수 임용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의 경직성을 보여주는 게 아닌지 한번 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