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컬럼(금융부,사회부)

[기자24시] 한은 궁색한 변명 / 1999.1.21.

joon mania 2015. 7. 17. 19:12

[기자24시] 한은 궁색한 변명 / 1999.1.21.

[윤경호] 외환위기 초래의 책임에 대한 재정경제부나 한국은행 등 정책당국의 청문회 보고를 보면 국민들만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행은 19일 국회 IMF 환란 조사특위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환 란의 책임을 당시 재경원에 돌리는 견해로 일관했다.

더욱이 97년 3월에 일찌감치 외환위기 초래 가능성을 짚으면서 대책 을 강구하지 않으면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려야 한다는 보고서를 미리 내놓았다고 공치사하는 대목에서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외환시장 개입에 반대했는데도 재경원이 `규정'을 내세워 직접 관리 하고 지시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도 궁색하다.

외환위기를 오도록 만든 정책 수행의 잘못을 인정하기 보다는 `난 할 일을 했는데 네가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한국은행이 97년중 수차례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당시 재경원과 비슷 하게 낙관적인 논리를 펼친 대목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우선 경제가 추락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96년 말에는 `우리는 멕시코 와 같은 금융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작다'고 지적했다.

97년 초 외환정책에 대한 보고서에서는 당시의 환율이 균형 수준이라 고 진단했는가 하면 기아사태 직후인 8월에는 4·4분기 외환보유액이 늘어날 것이라는 견해까지 내놓았다.

재경원이 호도했던 경제 현실에 대해 한국은행도 적잖게 일조했던 셈이다.

한국은행이 통화 외환정책의 당사자이면서 제도적으로 당시 재경원의 주도권에 끌려 다닐수밖에 없었던 점은 인정된다.

그렇다고 한국은행이 정책의 칼자루를 쥔 재경원에 올린 보고서나 정 책제의를 묵살만 당했다는 항변은 설득력을 얻기 어려워 보인다.

당시 한국은행이 제출했다는 일련의 보고서는 상황을 제대로 진단하 지도 못한데다 대부분 내부 검토용이었거나 단지 정부에 건의하는데 그쳤던 `생색용'에 불과했다는 인상이다.

보고서중 상당수가 대외비였고 일반에 공개되지 않아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에게는 장막에 가려진 정보에 그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책임에 대한 한국은행의 입장 표명은 지난 18일 재경부의 ` 내탓이 아니다'는 답변과 보고에 수준을 맞춘듯 하다.

재경부가 버티는데 한국은행만 책임을 자인하면 혼자 뒤집어 쓴다는 판단을 했을수도 있다.

재경부나 한은의 정책담당자들에게 이번 청문 회가 한순간 버티기만 하면 넘어갈수 있다는 일과성이 아니라 책임소 재를 따져 응당한 댓가를 치르게 하는 역사의 심판대로 만들어야 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