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러셀을 다시 본다(2020.8.22.)
철학·수학자로 기억되나
사회참여로 이성의 의미를
확인한 열혈 운동가였다
지금 대한민국 지성인들이
그에게 읽는 메시지는 뭘까
김용운 선생이 정리한 역대 수학자와 철학자에 대한 평가는 가히 촌철살인이다. 지난 봄 돌아가시기 직전 펴낸 유작 `개인의 이성이 어떻게 국가를 바꾸는가`라는 책에서다. 그 중에 내 눈길을 강하게 끌어간 이는 버트란드 러셀(Bertrand Russell)이었다.수학자이자 논리학자,분석철학자로서 결국엔 사회참여를 통해 이성의 의미를 확인한 사회운동가였던 러셀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러셀은 100년에서 딱 두해 못 미치는 나이까지 장수하다가 1970년 떠났다. 88세 때 반전 집회에 참여하고 붙잡혀 구류형을 받기도했다. 백작 작위의 웨일스 귀족이었다. 5번 결혼, 4번 이혼이라는 화려한 사생활 소유자다. 1950년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10년 쓴 `수학 원리`에서 러셀은 스스로의 지적 편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머리가 가장 명석할 때는 수학을, 좀 떨어질 때는 철학을, 더 나빠지기 시작하면 역사와 사회 문제를 연구한다." 김용운 선생은 러셀의 익살을 이렇게 더 확장할 수 있다고 첨언했다. "머리가 더 나빠지면 교육에 관심을 갖고 학교 경영을 했으나 실패했고, 그보다 더 나빠진 후엔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베트남전 반전운동과 비핵화 평화운동에 앞장섰다. 말년에는 프랑스 지식인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회참여를 하다 생을 마감했다." 소크라테스 이래 서구 사회의 지성은 사회참여에서 이성의 의미를 확인했다. 러셀의 방식으로는 이성을 충분히 닦은 뒤 마지막에 정치로 접어든다. 정치 제일주의를 숭상하는 한국과는 정반대라고 김용운 선생은 일갈한다.
대학에서 수학과 철학을 가르치던 러셀의 사회참여는 1차세계대전 때 이미 시작됐다. 1916년 독일을 향해 반전운동을 벌이다 트리니티 칼리지 강사직에서 쫓겨났다. 1918년 미국을 비난하는 글을 썼다가 6개월여 감옥에 갇혔다.1920년 중국혁명 주역 쑨원의 초청으로 베이징대학에 건너가 1년간 객원교수로 강의를 했다. 일본과 조선을 거쳐 중국에 들어갔는데 이때 느낀 인상을 "조선은 갓, 중국은 변발, 일본은 나막신(게다)"이라고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짧은 경험과 관찰이었지만 `중국의 문제`라는 글을 통해 100년후를 내다보는 혜안을 보여줬다. 전통 문명은 긍정적이지만 당시 부패와 무능, 탐욕이 심각하다는 것과 서양인에 비해 뒤지지 않을 소질을 갖고 있는 중국이 훗날 제국주의화 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의 말년은 비핵화 운동으로 온통 채워졌다. 1954년 3월 1일 미국이 태평양 비키니섬에서 핵실험을 하자 나섰다. 그해 12월 BBC에 출연해 핵전쟁 위험을 경고하며 핵무기 개발 중단을 부르짖었다. 1955년엔 이인슈타인을 설득해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을 내놓았다. 여기에 동서양 진영 최고 과학자 11명이 추가로 서명했다. 이를 모태로 1957년 설립된 것이 퍼그워시 컨퍼런스다. 러셀의 뜻을 이어받아 퍼그워시 컨퍼런스를 이끈 이가 조지프 로트블랫이었다.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작업인 맨해튼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폴란드 출신 유태인 물리학자였다. 그 공로로 1995년 로트블랫에게 노벨평화상이 수여됐으니 사실상 러셀에게 주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러셀은 데카르트의 이성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경험주의 철학자로 분류된다고 김용운 선생은 정리했다. 현실속에서 반전과 반핵 운동 등 사회참여로 이성을 구현했기 때문이다. 여론의 공격이나 정부 등 기득권 세력의 탄압으로 이성을 속여야하고 소신을 굽혀야 하는 상황을 맞으면 러셀은 차라리 고독을 선택했다고 한다.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게 자기가 옳다는 것을 끝까지 실천하는 지적 정직성으로 일관한 학자였다고 김용운 선생은 평가했다.
2020년 대한민국의 지성인들은 버트란드 러셀의 철학에서 어떤 메시지를 찾아낼까. 그의 저술을 되씹어본 뒤 한번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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