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청와대 취재 수첩

2006년초 청와대 취재 비망록 5

joon mania 2015. 8. 8. 22:00

2006년초 청와대 취재 비망록 5


<청와대 문서 유출 사건>


  열린우리당 최재천(崔載千) 의원이 공개한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한 지난해 12월29일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록은 청와대 의전비서관실에 근무하는 행정관에 의해 유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청와대의 자제 조사결과 발표만을 토대로 할 경우 기밀문건 유출은 청와대 행정관의 '고의'가 아니라 '부주의'에 의한 것이며, 유출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최 의원이 독자적으로 당시 이종석(李鍾奭) 사무차장 등 NSC 라인을 비판하는데 활용한 것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보안의식이 몸에 배있어야 할 직업외교관 출신의 행정관이 보안업무규정을 위반하면서까지 NSC 3급 기밀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이유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명쾌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특히 청와대 비서실에서도 대통령의 최측근에서 의전을 담당하던 외교관이 극비문건을 유출했고,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외교노선에 심대한 손상을 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청와대내 외교안보팀의 균열상을 노출한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NSC 기밀문건 유출 전말 = 청와대 민정수석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의전비서관실의 이모 행정관(외무고시 22회)은 지난해 1월말께 서울시내 호텔에서 최 의원을 만나 문제의 NSC 상임위 문건을 보여주었다.


문건 '유출'은 시점상으로 1월20일 반기문(潘基文) 외교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워싱턴에서 전략적 유연성 합의 공동성명을 발표한 직후였고, 양국 합의 내용을 놓고 국내에서 참여정부 외교정책 실패 논란이 일던 때였다.


특히 최 의원은 공개적으로 "동북아 균형자론은 전면 폐기됐다"며 대미 외교라인의 인식부족때문에 전략적 유연성 합의 성명에 사전동의나 사전협의 조항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비판의 선봉에 나서고 있었다.


이 무렵 최 의원과 이 행정관은 외교부 출신의 전 청와대 행정관인 K씨와 함께 한 자리에서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화제로 오르자 이 행정관은 자신이 갖고 있던 12월29일자 NSC 회의 문건을 보여줬고, 최 의원은 이를 옮겨적었다는 것.


이 행정관은 "최의원이 발표를 위해 필사를 하는 것이 아니고 참고자료로 쓰기위한 것으로 인식하고 제지하지 않았다"고 청와대 조사에서 진술했다. '유출'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청와대도 "고의성은 없었고, 부주의하게 처신한 부분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략적 유연성 합의 내용을 놓고 비판론이 제기되고, 최 의원까지 비판대열에 가세하고 있던 시점에서 기밀문건을 최 의원을 만나는 자리에 갖고 간 것은 고의로 '유출'할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씻을 수 없어 보인다.


◇문건 유출 이유 = 참여정부 출범초 NSC 전략기획실에 근무했던 이 행정관은 미국에 치중하는 '동맹파' 외교 스타일에 불만을 가진 이른바 '자주파' 외교관으로 '자동파'(자주+동맹)를 자처한 이종석 차장의 '실용주의' 외교노선에 반발했었다.


이때문에 이 차장의 노선에 비판적 시각을 지닌 청와대내 '386' 소장파 그룹과 의기투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이 행정관의 문건 유출은 지난해 4월 전략적 유연성 협상과 관련한 NSC 의 대통령 허위보고 논란을 둘러싼 청와대 국정상황실의 문제제기로 '점검회의'까지 열렸던 청와대내 '대립'사건과도 무관치 않다는 시선도 있다.


이 같은 흐름에서 청와대 내부에 존재하던 '이종석 NSC 라인'에 대한 내부 견제 가 이 행정관의 '돌출 행위'로 표출됐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최 의원도 여당내에서 '이종석 NSC 라인'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던 '자주파' 그룹으로 분류되고 있다.


최 의원은 이 행정관이 보여준 NSC 상임위(12.29) 회의록을 토대로 2월1일 한 토론회에서 "이종석 차장이 `미국이 침략을 받지 않는 경우에 주한미군을 한반도 이외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한.미방위조약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면서 "정부는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한 문제들을 사전에 인식하고도 공론화시키지 않고,국민을 속여왔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기밀문건 관리부실 = 이번 조사과정에서 청와대 기밀문서의 관리 부실 문제도 드러났다.


문건 유출자로 지목된 이 행정관은 문제의 NSC 상임위 회의록 문건을 지난달 23일 제1부속실에서 이모 행정관으로부터 "업무에 참고한다"며 전달받아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NSC 상임위 회의록 문건은 3급 기밀문건으로 청와대내에서도 NSC, 국정상황실,부속실 등 10여명의 극히 제한된 사람만이 열람할 수 있으며, 의전비서관실 소속인 이 행정관은 문서 접근권한이 없다.


김 대변인은 "이 행정관은 외교부 직원으로서 외교문건에 관심이 있을 수 있지만 직무상 접근할 수 있는 범위 바깥에 있다"고 말했다.


같은 외교부 출신으로 친분이 있는데다 부속실과 의전비서관실간의 업무협조 차원에서 부속실의 이 행정관으로부터 의전비서관실 이 행정관에게 자료가 건네졌고,최종적으로 최 의원에게까지 공개가 되는 경로를 거친 것이다.


부속실 행정관은 상급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기밀문건을 자의적으로 '정상 보고 경로'를 이탈해 건넸기 때문에 내부 규정상 귀책사유가 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이에 따라 문건 유출자인 이 행정관을 외교부로 원대 복귀시켜 중징계 조치를 취하는 것과는 별개로 다른 청와대 관계자들도 기밀문건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물어 조치가 내려질 전망이다.


김 대변인은 "청와대 내부 지휘 책임여부와 조치 방안은 이후 비서실의 내부 절차를 거쳐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단 이 행정관이 의전비서관실의 업무 영역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돌출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업무상' 지휘권을 가진 상급자인 천호선(千皓宣) 의전비서관은 지휘 책임선상에서는 벗어나 있다는 의견들이 많다.


그러나 기밀문건 관리수칙을 어긴 부속실 이 행정관의 상급자인 문용욱(文龍旭) 제1부속실장은 지휘책임 문제가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나머지 내부 문건 유출 조사 = 청와대는 NSC 상임위 회의록 문건외에 전략적 유연성 협상과 관련해 최근 언론에 공개된 몇건의 국정상황실 내부 자료 유출 경위는 계속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NSC 회의록 문건과 달리 국정상황실 문건 등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유통되는 성격의 문서로 비밀 분류도 안돼 있고, 접촉 범위도 넓어 경위 조사에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이날 민주노동당 노회찬(魯會燦)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청와대 문건이라고 공개한 문건에 대해 "대통령에 보고된 문서목록에 없다"며 "문서가 생산된 부서가 명시돼 있지 않고 정식 청와대 문서인지는 좀더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등 야당은 청와대 발표의 축소.은폐 의혹을 제기하면서 관련자들의 문책 및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공세를 편 반면, 여당은 이에 대해 "가당치도 않 은 얘기"라며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에 주력해야 한다고 맞선 것.


특히 여야는 이번 사건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최 의원의 책임 여부에 대해서도 각을 세웠다.


한나라당 이계진(李季振) 대변인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청와대 내부의 유출자를 찾아내는데 이토록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것은 이번 사건을 개인 차원의 실수로 치부하기 위한 `시간 벌기' 차원으로 밖에 볼 수 없어 석연치 않다"고 주장했다.


통외통위 소속의 전여옥(田麗玉) 의원은 "문제가 될 게 뻔한데도 청와대 내부자가 여당 의원의 `딥 스로트(밀고자)' 역할을 했다는 것은 국익은 사라지고 파당적 이익과 개인적 목적만 난무하는 현 정부에 대한 파산선고나 다름없다"며 "최 의원도 공인으로서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한다"며 책임론을 제기했다.


같은 상임위의 남경필(南景弼) 의원도 "이번 사건을 한 개인의 잘못이나 돌발적 사고 차원으로 넘어가선 근본적 의혹이 풀릴 수 없다"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한 뒤 "부족하다면 국회 차원의 진상 조사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병국(鄭柄國) 홍보기획본부장은 "청와대가 내부단속도 제대로 못해 놓고 범인을 잡는다고 난리친 것 자체가 시스템의 허점을 드러낸 것"이라며 "특정인 한 사람의 책임으로 끝날 일이 아니고 대통령과 비서실장, 관련 수석 등 청와대 라인과 여당도 명백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김재두(金在杜) 부대변인은 "국가의 비밀문서를 `삼베바지에서 방귀 빠지듯' 다뤄서는 안된다. 한 집안의 가계부도 이렇게 다루지는 않는다"며 "단순히 한 행정관의 문책으로 끝날 일이 아니고, 책임자들을 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박용진(朴用鎭) 대변인은 "이번 사건의 핵심은 문서 유출 자체라기 보다는 국가안보의 중대사안인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국민적 동의없이 합해준 정부의 잘못된 태도"라며 "청와대 발표도 액면 그대로 믿기 힘들거니와 청와대가 이 사태 수습을 유출자 색출에만 국한시키려는 모습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우상호(禹相虎) 대변인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앞으로 국가의 기밀문서를 엄정하게 관리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노웅래(盧雄來)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사건 축소 의혹에 대해 "한나라당이 집권했던 과거에나 가능했을 얘기"라며 잘라 말했다.


통외통위 소속의 유선호(柳宣浩) 의원은 "국민의 알 권리 충족 차원에서 고급기밀이 아닌 경우 과감하게 공개하는 공론화 시스템의 제도화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최재천 의원에 대해선 "국회의원이 믿는 바에 따라 소신대로 할 수있다고 본다. 징계 등을 거론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역시 통외통위 소속의 최 성(崔 星) 의원은 "정통 외무관료 출신의 청와대 행정관이 진원지라는 데 충격과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겠다"면서 "유출자에 대한 중징계 차원을 넘어 정보 관리시스템의 정비 등 종합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 행정관 누구? =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한 기밀문건을 유출한 것으로 청와대 조사결과 확인된 이(李)모 행정관은 늦깎이 외교관으로 외교부내에서는 `원칙주의자'로 알려져 있다.56년생으로 서울 법대를 1982년에 졸업하고 다른 일을 하다가 6년 후인 1988년에 외시 22회로 외교관의 길을 시작했다. 외교부 내에서는 무려 11기 차이가 나는 고교 동기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행정관은 밴쿠버 총영사관과 브라질 대사관 근무를 거쳐 통상교섭본부장 보좌관 등을 거쳤으며, 지난 대선 기간에 외교정책과 관련해 인터넷 토론을 벌이면서논리정연한 댓글과 외교관 신분이라는 점이 눈에 띄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후보선거 캠프와 인연을 맺게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런 후 그는 대통령 인수위에 참여했고 청와대 내의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기획실, 의전비서관실로 자리를 옮겨 일해왔다.

이 행정관은 깨어있는 역사 의식을 가진 외교관이 좌우명이며 양심과 합리성,자존심을 지키는 인간다운 삶을 살겠다고 밝힐 정도로 나름대로 `정도'를 걷기위한 노력을 해왔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그런 탓에 그는 미국에 치중하는 우리 정부의 외교 스타일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의견을 자주 제시했고 주변과 `충돌'도 없지 않았다는 후문이다.이 행정관이 참여정부 출범후 NSC로 파견 근무를 하게 되면서 청와대 내의 뜻 맞는 `386 세대' 행정관들과 함께 대미 외교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자주 제시했으며, 전략적 유연성 기밀문건 유출도 그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외교부 내에도 이 행정관과 의기투합하는 `386세대 외교관'들이 몇명 있기는 하지만 부처내에서는 대체로 이들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특히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해 경위야 어떻든 이미 결론이 난 상태에서 관련 문건을 유출해 논란을 야기한 것은 과장급 외교공무원으로서 적절하지 못한 처사라는 지적이 외교부내에서는 팽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