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필동정담] 구상나무(2019.1.29)

joon mania 2019. 2. 15. 15:38

[필동정담] 구상나무(2019.1.29)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벌써 한 달 전 일이지만 연말 크리스마스 때 전 세계에서 만드는 장식 트리가 한반도에만 자생하는 토종목이라는 걸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구상나무(학명 Abies koreana)다. 한라산과 지리산, 덕유산 등지의 해발 1500m 주변 고지대에 서식하는 상록교목이다. 

국립산림과학원 기록을 보면 구상나무를 세상에 알린 건 구한말 포교 활동을 하던 프랑스 출신 신부들이다.
식물학자였던 위르뱅 포리 신부와 에밀 타케 신부가 1907년 한라산에서 채집해 유럽에 보냈다. 이후 1917년 하버드대에 재직 중이던 식물분류학자 어니스트 윌슨이 제주에 직접 와 확인한 뒤 1920년 관련 저널에 발표하며 학계에서 인정을 받았다. 구상나무는 이후 70여 개량종이 개발돼 미국과 유럽 일대에서 키웠다. 조경수로 확산됐고 목질이 좋아 가구와 건자재로도 활용됐다. 무엇보다 사철 내내 초록빛에 삼각뿔 모양을 유지한 덕분에 크리스마스트리로 제격이어서 가장 사랑을 받고 있다. 

다른 나라에는 이렇게 퍼졌는데 정작 원산지인 한라산에서는 갈수록 구상나무 군락이 줄어 이대로 가면 100년 이내에 멸종할 수도 있다고 식물학자들은 걱정하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2011년 구상나무를 멸종위기종(EN)으로 지정했다. 분포면적이 10㎢ 이하로 줄어들면 극심멸종위기종(CR)으로 바뀐다. 소나 말 방목을 금지하면서 관목류가 늘어 구상나무 생장 환경을 악화시킨 점이 우선 꼽힌다. 기온 상승 때문에 구상나무 자생지로 소나무가 파고들어와 종간 경쟁에서 밀린 이유도 있다고 한다. 자생지역의 분포가 극히 한정된 종(種)이 지구온난화 같은 환경 변화에 이렇게 위태로워진다는 것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코리안 퍼(korean fir)라는 이름으로 잘 팔리고 크리스마스트리 용도로 우리가 역수입을 하고 있으니 역설적이다.  크리스마스트리 용도라면 구상나무와 거의 유사한 모양의 분비나무나 가문비나무도 대신 쓸 수 있다. 눈 쌓여 있는 나무 모습을 보면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한반도에서만 자생하는 희귀 식물자원인데 아무리 지구온난화나 환경 변화 때문이라도 점차 멸종하는 사태를 뻔히 보고만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식물학자들이 지혜를 모아 해법을 마련해줄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