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청와대 취재 수첩

노대통령의 말에 대한 두가지 지적

joon mania 2015. 7. 18. 18:47

노대통령의 말에 대한 두가지 지적


먼저 한겨레에 실린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의 글입니다.`정신분석학으로 본 노 대통령`이라는 제목입니다. 

또 하나는 중앙일보에 이관열 강원대 언론학교수가 쓴 글입니다. 그는 대통령의 말이 국민들에게 엔도르핀을 샘솟게해줘야 한다고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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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주 ‘국민과의 대화’에 나선 대통령의 육성에는 착잡함과 답답함이 

그대로 담겨 있다. 자신의 진정성을 몰라주는 국민들에 대해 답답함을 넘어서 

억울함이나 분노까지 생긴 듯했다. 그의 정확한 어법뿐 아니라 비언어적 

요소까지를 포함한 시청소감이 그렇다. 내가 보기에 근래 노대통령의 속마음을 

극명하게 드러낸 발언은 그의 민심론이다. 


그는 “역사속에서 구현되는 민심을 읽는 것과 국민들의 감정적 이해관계에서 표출되는 민심을 다르게 읽을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조작된 민심, 위험한 민심도 있는 법이니 단면적으로 봤을 때 민중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요지다. 역사인식의 한 관점에서는 수긍할 수 있는 말이지만 최근 국민에 대한 ‘과감한 거역’을 표방하며 민심을 재정의하는 듯한 대통령 노무현의 주장엔 동의하기 어렵다. 


정신분석학은 ‘환자는 항상 옳다’는 대전제에서 출발한다. 의식 수준에서는 엉뚱하고 비논리적인 환자의 말이나 행동들도 무의식 수준에서는 그 사람의 핵심동기를 드러내는 일정한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으로 나타난 말만으로 헛소리라고 무가치하게 여겨서는 안된다. 이것은 마케팅에서 말하는 ‘고객은 언제나 옳다’는 말과는 조금 다르다. 시장에서 말하는 고객만족은 지극히 의식적 수준의 개념인데 반해  정신분석학은 철저하게 대상의 무의식 차원에 주목한다. 의도를 가진 특정집단이나  개인에 대해서는 명징한 의식의 차원에서 옳고 그름을 따져봐야 하지만 민심이란 본질적으로 민중의 무의식이 투사된 개념이다. 그런 면에서 민심은 언제나 옳다고 나는 생각한다. 


‘민심과 동떨어진 대통령‘이란 비판에 대한 노대통령의 반응은 ‘알고 있지만 거역할 수밖에 없다’이다. 요즘들어 빈번하게 ‘내가 국민의 여론과 동떨어진 느낌’이라거나 ‘뜬금없다고 느낄 것이다’는 식의 표현을 쏟아내면서 대통령 자신과 국민사이의 ‘생각의 괴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네가 좋아’라고 말할때 사람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는 무한대에 가깝다. 마주치기만 해도 머리칼이 쭈빗거릴 만큼 맹렬한 사랑의 감정이 있음에도 표현상으로는 ‘나는 네가 좋아’정도로 그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을 향해 ‘네가 나를 약간 좋아하는 건 알겠지만’이라고 말하면 듣는 이는 절망스럽다. 알고는 있지만 실체적 진실과 정도의 차이가 심하다면 그것은 모르는 것과 같다. 내가 보기에 노대통령의 ‘잘 알고 있다’는 인식은 자신의 논리를 관철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지 진짜 민심을 알고 있다는 느낌은 아니다. 나는 대통령 노무현의 진정성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민심을 정확하게 읽는 일과 진정성은 별개다. 


소신과 배짱을 굽히지 않아 대통령까지 되었지만 그런 개인적 성공경험이 어떤 경우에도 적용되는 만능의 법칙일 수는 없다. 

민심과 동떨어진 대통령이란 비판에 대해 ‘역사적 책무’같은 비장한 멘트로만 대응할 게 아니라 혹시 내 인식이나 사실판단에 심각한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닌지 심사숙고해주길 청한다.


노대통령의 자기인식은 대통령이 되기 전 정치인 노무현의 ‘선구자적 모습’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지만 지금 국민들의 눈에 비친 노대통령은 선구자가 아닌 

계몽군주에 가깝다. 특정사안과 관련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더 많은 고민을 한 

대통령의 눈에는 자신과 현격한 견해 차를 보이는 국민들의 반응이 어리석은 

감정적 대응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의 무의식은 언제나 옳다. 

정혜신/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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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엔도르핀 샘솟게 하는 대통령


이렇게 큰 실험실이 있을까. 파블로프가 살아 돌아온다면 그의 이론이 한 나라에서 반복적으로 실험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무슨 말인가. 대통령의 말에 수많은 사람이 동일하게 반응하는 현상을 두고 말한다. 대통령이 입을 열면 만인의 입이 자동적으로 열린다. 이제는 대통령이 말을 하지 않아도 반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전선(電線)이 상호 연결돼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대통령이 반복하는 '말씀'이 몸에 엔도르핀 같은 좋은 호르몬을 돌게만 한다면 괜찮다. 그래서 대통령의 모습을 보기만 해도 미소가 나오고, 기운이 솟구친다면 아무리 똑같은 말을 많이 들어도 좋은 것이다. 


엔도르핀을 솟아나게 한 정치인을 들라면 으뜸은 케네디다. 여성들만 좋아한 것이 아니었다. 남자들도 부러워했다. 카메라가 24시간 케네디를 쫓아다녔다. 휴양지든, 집이든 그의 얼굴, 몸짓 자체가 모든 이를 즐겁게 했다. 입을 열면 그 인기는 더했다. 케네디를 볼 때마다, 그가 말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번지고, 엔도르핀이 돌았던 것이다.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는 신(神)도 그의 인기를 질투해 그를 빨리 데려갔다고 했다.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의 경우도 그의 정책을 반대하고, 선거에서 그를 찍지 않은 사람들도 그가 말하는 모습을 보면 입가에 미소를 짓더라는 실험 결과가 있었을 정도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오늘의 한국인들에게는 너무 이상적이고, 먼 나라 이야기다. 아직도 우리의 대통령은 국민이 뭘 잘 모른다고 생각하고, 가르치려 들고, 설득하려 든다. 해방 전후사를 다룬 역사책 몇 권 방금 읽고, 그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 "당신들은 속아 살아왔다"고 강의한다. 그런데 우리네 일반 사람의 정치적 식견은 외국의 정치 비평가 못지않은 수준이다. 일반 국민도 대한민국의 현재와 과거에 대해 알 만큼은 다 안다. 


바야흐로 독서와 그들만의 토론으로 역사를 배운 세대가 역사를 몸으로 직접 체험한 세대까지 가르치려 들고, 그들을 부정하는 세상이 되었다. 노 정권은 어떻게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한 점의 의심이나 회의도 없는 것일까. 지금까지 사실로 받아들였던 것들이 새롭게 밝혀지는 역사의 진실 앞에 무릎을 꿇는 일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데. 그리고 처칠은 20대에 진보적이지 않으면 심장이 없는 사람이고, 40대에 보수적이지 않으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념도, 정치 철학도 진화해야 한다는 대정치가의 교훈이다. 


우리 지배권력은 과거의 이데올로기에 결박된 포로들이다. 더욱이 역사에 대한 겸허함, 선배 세대들의 삶에 대한 존경심 같은 덕목도 부족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다. 동료 인간에 대한 예의, 배려, 감정이입은 그 어떤 이념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변해도 이러한 가치들은 변하지 않는 것이고, 그것은 사회 구성원들을 묶어 주는 끈이다. 


이전 세대의 경험과 역사관이 다음 세대로 전수되지 않는 나라는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는 나라다. 그게 바로 지금의 우리나라다. 열심히 더 나은 미래를 보고 살아온 많은 기성세대가 바보가 되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자식 세대와 부모 세대가 극렬한 의견 차이가 난 지난 선거에서 크게 덕을 보았어도, 세대 간 균열 문제는 대통령이 된 뒤에는 시급히 치유에 나섰어야 했다. 그것은 미래에 큰 재앙이 될 씨앗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노 정권은 세대 간 단절과 갈등을 이용하거나 방관하는 것으로 비치는데 이는 민족과 역사 앞에 가장 큰 빚을 지는 것이다. 


그래도 어찌 됐든 한국인들은 타고난 간디다. 속으로 삭이고 잘도 견뎌낸다. 다수 국민은 간디의 비폭력.무저항 정신을 특별히 배우지도 않았는데 얼굴 붉히지 않고, 묵묵히 생업에 전념하고 있다. 사실 현재의 파고는 우리 과거사를 되돌아볼 때 그다지 높은 것도 아니다. 이까짓 명(命)이 다한, 흘러간 이념 붙들고 있는 사람들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은 불굴의 의지와 투지의 한국인들에게는 가당치 않은 일이다. 수치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이제는 너무 비관하지 말고, 낙담하지도 말고, 그리고 주저앉지 말아야 한다. 힘을 내야 한다. 그리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 앞으로는 엔도르핀이 돌게 하는 대통령을 꼭 뽑아야 하고, 또 그런 세상은 반드시 온다는 꿈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관열 강원대 교수.언론학